"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숄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법정(法頂. 1932∼2010) 스님의 산문 '무소유(無所有)'는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에서 출발한 성찰과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1931년 9월 한 회의에 참석하려고 이동하던 중에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보이며 간디가 했다는 이 말을 책에서 읽고 스님은 몹시 부끄럽다고 느낍니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구나. 그렇게 지내다 어딜 가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자신의 난초 두 분(盆. 화분 분)에 "정말 지독한 집착"을 하고 있음을 문득 깨닫습니다. 이 얽매임에서 벗어나야겠구나. 법정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난초를 친구에게 떠나보냄으로써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고 글에서 밝힙니다. 그 해방감에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도 다짐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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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향기롭게 제공]
법정 스님의 맏상좌이자 길상사 주지인 덕조 스님이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무소유 해설을 봅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걸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갖지 말라'가 아니라 '갖되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지요." 필요와 불필요의 구분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말에도 그는 부연합니다. "나는 안 쓰는데 남 주는 건 또 아깝다면…그게 불필요한 것이지요. 쓰지도 않으면서 붙들고 있으면 그게 바로 얽매여 있는 것이고요. 불필요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 그게 정신적 자유이고 곧 무소유입니다." 법정의 무소유 산문에도 이미 힌트가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산문집 『무소유』는 1976년 4월 15일 초판이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무소유를 포함하여 글 35편이 실렸습니다. 이 책은 국민의 책이 되어 인쇄를 거듭했지만, 전신이라 할 『영혼의 모음』은 1973년 1월 1일 발행되어 그리 오래가진 못한 셈입니다. 이 책 역시 무소유를 비롯하여 글 65편을 담았고, 그중 25편이 『무소유』에 그대로 수록되었답니다. 법정 스님 스스로 책 제목을 '무소유'로 하지 않으면 재출간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전언이 있습니다.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법정 스님이 돌아가실 때 남긴 당부 말씀은 제법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는 출간하지 말라는. 덕조 스님은 "단순히 출판만 금지한 게 아니라 '내(법정) 이름으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신 거죠"라고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법정 스님의 원적(圓寂. 주로 승려의 죽음을 이르는 말) 15년 만에 처음으로 스님의 가르침과 삶을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가 지난달 19일 열렸다고 합니다. 덕조 스님의 인터뷰 제목이 이해가 갑니다. "법정 스님 살아계셨다면, '이놈! 뭐 하는 짓이냐' 하실 수도."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법정, 『맑고 향기롭게』, 조화로운삶, 2006 (성남시 전자도서관 전자책, 제공처 교보문고) : 산문 '무소유' 일부 인용
2. 동아일보, 덕조 스님 인터뷰 "법정스님 살아계셨다면, '이놈! 뭐 하는 짓이냐' 하실수도" (이진구 기자 입력 2025-11-10 03:00)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51109/132733637/2 : 덕조 스님 인터뷰 문답 일부 인용
3. 월간금강, 명저명론(268호)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가 아니다 〈무소유〉- 「무소유」 법정 지음 (글 윤청광 입력 2017.10.16 14:55) - https://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545 : 『영혼의 모음』이『무소유』로 바뀌어 출간되는 과정과 각 모음집 해설 인용
4.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1월11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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