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의 패러다임 디자인]〈14〉벤처 2강으로 가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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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PD(전 국회사무총장)이광재 PD(전 국회사무총장)

벤처 4강이 아니라 벤처 2강으로 가야 한다. 미국 다음 한국이다. 스타트업 네이션으로 가야 한다.

1997년 IMF 위기 당시 한국은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경제성장률은 -5.5%로 추락했고, 실업자는 1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성장률은 +10.7%로 반등했다.

OECD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이라 평가했다. 그 배경에는 벤처와 금융의 결합이 있었다. 코스닥 개설, 벤처특별법, 스톡옵션 제도가 마련되자 자본과 인재가 벤처로 몰렸고, 인터넷·반도체·게임 같은 신산업이 태어났다. 세계은행은 “거품도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혁신 생태계를 남겼다”고 분석했다.

당시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벤처는 1만개 이상 창업했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었다. 벤처 종사자는 16만명에서 3년 만에 50만명으로 늘었다. 네이버, 카카오, 네오위즈, 엔씨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위기 속에서 청년 인재들이 대기업 대신 벤처를 택했기에 가능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전환이 다시 필요하다.

이제는 AI+ 시대다. 모든 개인과 기업이 AI를 장착하는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자율주행, 로봇, 선박, 방위산업은 물론이고 교육, 의료, 문화, 행정까지 전 분야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이끌 기업과 인재가 도전할 수 있도록 자본과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

첫째, 자본시장의 전환이다. IMF 이후 코스닥은 벤처 자금의 통로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제약이 많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상장이 어렵고, 창업자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외부 자본 유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의 나스닥은 애플·아마존·구글이 적자 상태일 때도 상장을 허용했다. 투자자는 위험을 감수했고, 기업은 미래를 보고 자금을 조달했다. 그 결과 세계적 기업이 탄생했다. 한국도 코스닥을 '테크 나스닥'으로 전환해야 한다. 적자 기술기업도 성장성이 인정되면 상장할 수 있어야 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창업자가 경영권을 지키면서도 투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상장 전 세컨더리 거래를 허용해 투자자의 회수 통로도 열어야 한다.

둘째, 금융상품의 혁신이다. 지금 한국의 벤처는 여전히 담보 위주의 금융 관행에 막혀 있다. 그러나 혁신기업의 자산은 부동산이 아니라 특허, 데이터, AI 모델 같은 무형자산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지식재산(IP)을 담보로 금융 거래가 활발하다.

일본 소니는 음악 저작권을 활용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고, 미국에서는 바이오 특허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기업이 많다. 한국도 IP 가치평가 제도를 표준화하고, 특허·데이터를 담보로 ABS나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책은행은 대출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옵션을 제공하고, 벤처부채(Venture Debt) 시장을 열어 창업자가 지분을 잃지 않고도 성장 자금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인재 유입을 위한 제도 개선이다. 증권형 토큰(STO)을 도입해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이고, 스톡옵션과 RSU 제도를 개혁해 우수 인재가 벤처로 향하게 해야 한다. IMF 직후 스톡옵션은 청년들을 벤처로 이끌었지만, 지금은 세금 부담과 행사 요건 때문에 매력이 떨어졌다.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고 행사차익에 대해 이연 과세를 도입해야 한다. 퇴사자도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성과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젊은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은 지쳐 있다. 다시 벤처, 스타트업 붐을 만들자. '한번 해보자'는 국민적 기운을 모으자. 한국 문화가 세계를 끌어당기듯이 Buy KOREA를 다시 한번 만들자.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기금 주식 투자 허용과 벤처 모태펀드 조성 등이 추진되면서 코스닥은 700에서 1800포인트로, 주식시장은 2200까지 성장했다. 이후 20년 가까이 정체돼 있던 주식시장이 최근 들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미래로 이어가는 일이다. 대통령실과 전 부처가 함께 AI+ 경진대회를 열어 기회의 장을 넓히고, 전국 대학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외국인이라도 한국 창업대회에서 수상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세계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 실리콘밸리와 연계한 글로벌 협력의 길도 함께 모색해야 하고, 동시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글로벌 코리안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기술혁명의 진보가 생활의 진보로 이어질 때, 우리의 성과는 국민 모두의 삶을 바꾸게 된다.

그 결실은 곧 복지국가다. 경제성장의 성과를 토대로 복지국가를 세우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도전과 혁신을 멈추지 않는 나라로 나아가자.

이광재 PD(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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