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한국 외교, APEC 뒤 웃으려면

1 week ago 6

윤완준 논설위원

윤완준 논설위원
미중일을 상대로 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외교전의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관세 협상 막판까지 한국을 압박한 트럼프,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강성 우파 다카이치까지 만만한 상대가 없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5개월째에도 한미 한중 한일 관계 모두 불확실성의 안갯속에 있다.

한미는 팽팽한 관세 협상이 길어지면서 정작 동맹의 큰 그림을 그릴 청사진이 흐릿하다. 한중은 ‘안미경중은 끝났다’고 선언한 한국과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 사이에 서 있다. 한일은 ‘과거사를 넘어 미래지향적 협력으로 가자’는 이시바 시절의 합의가 이어질지 기로에 있다. 미중일 외교에 드리운 어슴푸레함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을지에 APEC 외교전의 성패가 달렸다.

대미 대중 대일 불확실성 걷어내야

첫 관문은 한미 정상회담이다. 최대 쟁점인 대미 투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면 합의를 미루는 게 낫다. 다만 그 신경전 와중에 동맹의 핵심 축인 대북 억지력 강화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는 건 우려스럽다.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없이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을 막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 출범 이후 한미가 이를 집중 논의한 적이 없다. 8월 정상회담 때도 트럼프의 확장억제 공약은 없었다.

미국의 대북 정책도 모호하다. 트럼프가 비핵화 없는 핵 동결에 덜컥 합의해도 된다고 보는지, 어떤 북핵 구상이 있는지 분명치 않다. 한미는 한국이 우라늄 농축 권한 등을 더 많이 갖기로 공감했다고 한다. 향후 원자력 협정 개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계심을 높일 국내 일각의 핵무장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트럼프가 북핵을 용인하고 핵우산 강화에도 미온적이라면 불필요한 핵무장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이 비핵화·북핵 억지 현안에서도 긴밀한 공조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 이유다.

2016년 사드 보복으로 냉각된 한중 관계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양국 갈등을 조정할 외교가 실종됐다.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이를 되살리는 게 1차 과제다. 10년 가까이 암묵적으로 이어지며 한중 협력의 걸림돌이 된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결도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과도 척지지 않겠다는 전략이 ‘미국의 대중 억제에 동참하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와 어디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미중이 관세 전쟁 휴전을 시사했지만 첨단기술·안보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의 미래가 달린 산업에서 한화오션처럼 미국과 협력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 군사력 견제와 무관치 않은 중국의 서해 구조물 알박기도 해양주권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두루뭉술 넘어가면 이 대통령의 말처럼 미중 두 개의 맷돌 사이에 끼어 이도 저도 못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李 정부 5년 대외 전략의 분수령

한미 관계가 안정적이라 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일 관계마저 흔들리면 외교의 우군을 잃는 셈이 된다. 다카이치와의 회담에서 한일 관계가 오락가락 트럼프 시대를 헤쳐 나갈 ‘안보·경제의 안전판’이라는 비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대화를 추진해 왔다.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려는 한국으로서는 대북 정책에서 협력의 여지가 있다. 한일이 각자 강점을 가진 반도체 등 첨단기술 공급망에도 협력 공간이 많다. 왜곡된 역사 인식이 이런 협력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공감대 형성이 먼저다.

APEC은 국격 상승의 기회이지만 미중일과의 연쇄 회담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이재명 정부 5년 대외 전략의 향방을 결정할 분수령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외교 주춧돌’을 놓을 역량이 있는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오늘과 내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카를로스 고리토 한국 블로그

    카를로스 고리토 한국 블로그

  • e글e글

  • 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

    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