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모두발언 끝에 이렇게 말하며 불쑥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 허용을 결단해 달라고 말했다. 순간 참모진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대통령의 직설 화법에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는 참모도 있었다. 미국이 최우방국인 영국 외에는 좀처럼 빗장을 열지 않았던 핵추진 잠수함 문제를 실시간 생중계되는 공개 석상에서 꺼낸 것이 자칫 회담 분위기 전체를 망칠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분히 자세히 설명을 못 해서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추켜세운 직설
핵추진 잠수함 문제는 8월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비공개로 논의된 의제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반응이 떨떠름했다는 것이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은 대통령제가 아니냐”며 이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한국이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전통적 정치 문법에서 벗어난 트럼프식 협상이 아니었다면 얻어내기 힘든 결과다. 실무 협의를 통해 철저히 조율된 의제만 논의하는 통상적인 회담이었다면 핵추진 잠수함은 협상 테이블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조차 어려운 주제다.
한미가 넉 달간 끌어온 관세 협상도 정제된 외교적 문법 대신 거친 비즈니스 세계의 위협과 회유 끝에 타결됐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협상 타결을 알리는 브리핑에서 “어제저녁에도 협상 전망이 밝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정상회담 당일 새벽 미국에선 최후통첩을 날리듯 ‘정상회담 판을 뒤엎겠다’는 위협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한다. 사인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방명록에 “와우! 위대한 정상회담의 아름다운 시작”이라고 적었다. 아름다운 정상회담은 당일 87분 만에 막을 내렸다. 남은 것은 또다시 시작되는 끝없는 협상이다. 당장 대미 투자펀드 투자처 선정과 반도체 관세 인하 여부, 농축산물의 추가 시장 개방 등 핵심 쟁점을 두고 한미 양국 고위급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핵추진 잠수함은 언제 어떤 청구서로 돌아오게 될지 모른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 대해 “관세 협상을 제일 잘한 리더이자 국가”라고 표현했다고 공개했다. 지금은 맞을지 몰라도 내일은 정반대로 다른 평가로 뒤바뀔 수 있는 게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상이다. 공식 문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때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igermask@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1 week ago
5
![[기고] AI 제조 혁신의 성패, 내재화·생태계 구축이 가른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닷컴 버블의 교훈[김학균의 투자레슨]](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