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선물 경쟁과 힘의 외교
미국에선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에 황금 선물만 한 게 없다는 건 국제사회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일본은 황금 선물의 원조 격인 국가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가까운 친구’로 꼽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6년 황금 골프채를 선물해 황금 선물 경쟁의 서막을 열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는 황금 사무라이 투구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황금 골프공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절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요원들을 제거하는 데 썼던 원격 폭탄이 탑재된 ‘삐삐’ 모형을 금으로 도금해 선물했다.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추천서를 황금 액자에 담아 트럼프 대통령의 품에 안겼다. 이쯤 되면 황금 선물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인 셈이다.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 정상에게 준 선물을 보면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 프로 2년 차로 무명에 가까운 선수의 사인이 새겨진 야구 방망이를 선물했다. 다카이치 총리에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제공하겠다”라고 말치레했지만, 황금 골프공에 답례로 준 선물이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황금 삐삐를 선물한 네타냐후 총리에겐 함께 찍은 사진에 자신의 사인을 해줬고,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에겐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선물만 박했다면 좋았겠지만, 회담 테이블에선 더 인색했다. 외교 소식통은 “집권 2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은 더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덜 손해 입기 위한 협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누리는 안보·경제적 기회는 황금 선물과는 비교조차 어려울 만큼 막대하다. 문제는 선물의 가치가 아니라 동맹 외교에 나서는 인식이다. 강대국 간의 전략경쟁과 자국 우선주의 속에 다자주의와 정의, 인권 등 이상주의의 가면을 내팽개친 외교의 민낯은 힘의 질서를 과시하는 조공외교를 연상케 한다. 더욱이 냉전의 끝자락에 한국과 캐나다, 호주 등이 주축이 돼 다자무역 체제 확산을 위해 창설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강대국 중심의 위계적 국제질서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상징적이다.李대통령 “국력을 키워야겠다” 말한 이유다자주의가 후퇴하는 흐름은 한두 명의 정치인이 바뀐다고 쉽게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점차 정글을 닮아가는 국제질서 속에서 강자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실력과 협상력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나름대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조선(造船)과 반도체 때문 아니었나. 이재명 대통령은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국력을 더 키워야겠다”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강대국의 강압적 질서가 노골화되는 시대, 생존을 위해선 자강은 필수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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