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재영]전 부처의 경찰화… 감시-엄벌이 능사일까

1 week ago 6

김재영 논설위원

김재영 논설위원
내년에 정원을 20%가량 늘릴 예정인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최대 화두는 밀가루다. ‘빵플레이션’(빵+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밀가루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고, 설탕 업체의 담합 혐의도 들여다보고 있다. 국세청도 생활물가 밀접 업종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로 가세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식료품 물가가 너무 높다며 “고삐를 놔주면 (기업은) 담합하고 독점하고 횡포를 부리고 폭리를 취한다”고 비판한 이후부터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경찰’로 불리는 근로감독관을 현재의 3000명 수준에서 3년 뒤 1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산업재해와의 전쟁’에 대응한다는 명분이다. 보건복지부는 불법 사무장병원을 척결해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겠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에 대해 민생금융범죄도 근절하겠다며 전담 특사경 신설과 인지수사권, 강제조사권을 요구하고 있다.

수사 조직 늘려가는 행정부처들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단칼에 끊어내는 것이다. 소위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쾌도난마’ 같은 해법이다. 최근 정부가 난제에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나쁜 놈들’을 설정하고 강력한 단속과 수사, 엄벌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기존 경찰 조직 외에 각 행정부처까지 전방위로 동원된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10·15 대책을 통해 전쟁을 지휘할 전담조직 신설을 선언했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들어 ‘집값 띄우기’ 등 시장 왜곡에 대해 직접 조사·수사하고, 국토교통부 내 별도의 부동산 특사경도 두기로 했다. ‘부동산판 금융감독원’ 같은 기구는 집값이 급등하던 문재인 정부 때도 도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거래까지 위축시키고 과도한 재산권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란 속에 백지화됐다.

범죄를 척결하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만, 사안을 단순화시켜 진짜 원인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빵값이 오른 데는 환율 상승과 원자재 수급 불안, 인건비 상승, 복잡한 유통 구조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텐데 식품업계의 탐욕 탓으로 간단히 돌려버린다. 근로감독관 증원에 앞서 과거 정부에서 근로감독관을 1000명 늘렸는데도 산재와 임금체불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부터 따져봐야 한다. 건보 재정 문제도 안정적 재원 확보 방안을 찾고, 사무장병원 개설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먼저다.

정책 실패 감추는 핑계 아니어야

최근 국토부는 2023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집값 띄우기 정황이 있는 425건을 기획 조사 중이며 이 중 위법성이 짙은 8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비리가 만연한 듯 보이지만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 24만여 건에 비하면 0.2% 수준인데, 이를 근거로 투기꾼들이 집값을 끌어올린 주범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오랜 불신, 수요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턱없이 미흡했던 정부의 공급 대책 등부터 돌아봐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감독기관부터 설치하고, 대국민 서비스가 주 업무인 행정부처들을 감시와 통제, 처벌 강화에 동원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새로운 조사·수사기관이 만들어지면 조직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실적 만들기에 급급해 자칫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카르텔’ 탓으로 돌렸던 윤석열 정부에서 보듯 대중이 분노할 대상을 만들어 처벌하는 삼청교육대식 접근은 답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을 강조하는 진짜 이유가 정책 실패를 가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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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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