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한 렌틸콩 열풍… 성분과 숫자 놀음의 식탁[이용재의 식사의 窓]

1 week ago 6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에 살 때만 해도 렌틸콩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 당시 건강식 재료로 인기를 꽤 얻고 있었지만 그랬다. 강낭콩을 필두로 완두, 동부 등 익숙하고 더 맛있는 콩들이 한식 및 멕시코식 식재료로 풍성하게 활용된 덕분이다.

물론 렌틸콩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식재료 공부 차원에서 가끔 사서 조리해 먹었다. 알갱이가 작아 금세 익으니 끓는 물에 후루룩 삶아 샐러드로, 닭육수에 넣어 수프로 즐겼다. 조리의 핵심은 파스타와 마찬가지로 ‘알 덴테(Al Dente)’, 즉 가운데가 살짝 씹히도록 덜 익히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렌틸콩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가끔 먹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양식의 재료로만 여겼다. 쌀과 함께 어우러지는 곡식이야 보리, 조, 수수, 기장, 심지어 녹두까지 다양했기에 굳이 렌틸콩을 한식에 끌어들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다른 곡식들이 더 맛있어 낄 자리 또한 없었다.

그래서일까. 2025년 건강 트렌드의 중심에 ‘렌틸콩밥’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하다. ‘콩의 맛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은데, 렌틸콩은 팥맛이 난다’는 논리를 등에 업었다. 음식평론가이기 전에 직접 김치를 담그고 밥도 해 먹는 생활인으로서, 그 주장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물론 렌틸콩은 콩맛이 덜하고 어찌 보면 팥에 가까운 맛이 나긴 한다.

다만 팥의 단점 또한 공유하니 렌틸콩도 쓰고 아릴 수 있다. 트렌드를 이해해 보려 렌틸콩밥을 직접 지어 먹고, 편의점 도시락부터 즉석밥까지 시판 제품을 부지런히 먹어봤다. 대체로 맛이 너무 없었다. 또한 평범한 제품에 렌틸콩을 조금 섞어 ‘건강식’인 양 행세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씁쓸했다.

맛도 문제지만 렌틸콩을 넣어 지은 밥은 장립종 쌀로 지은 것처럼 밥알이 흩어진다. 식으면 약간의 찰기가 되살아나지만 푹 익은 렌틸콩의 질감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이런 맛과 식감은 차라리 호랑이콩을 비롯한 강낭콩이 더 잘 낸다. 이래저래 렌틸콩과 우리의 주식인 밥은 확실히 좋은 짝이 아니다. 건강을 좇아 트렌드에 맞춰 렌틸의 비율을 높이면 밥 본연의 맛을 배신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렌틸콩이 맛있지 않다는 주장에 ‘입맛은 주관적인 것’이란 반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미각만으로 음식을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맛 외의 측면에서도 렌틸콩의 입지는 자연스럽지 않다. 특히 한국의 2021∼2023년 평균 곡물 자급률이 19.5%에 불과한 상황에서 다양한 국산 곡물을 두고 굳이 수입 렌틸콩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영양 측면에서도 렌틸콩이 다른 콩이나 곡물보다 특별히 우수하다고 보긴 어렵다. 미세한 수치 차이는 결국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 현대인의 식생활 문제를 다룬 미국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음식과 영양 담론에서 기업들이 내세우는 성분주의와 숫자 놀음에 휩쓸리지 말라는 요지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성분주의와 숫자 놀음이 더 강화되는 추세다. 그 물꼬를 렌틸콩이 일부 텄다. 최근에는 ‘단백질 9g!’을 내세운 렌틸 두유가 등장해 직접 마셔봤다. 기존 무가당 두유에 렌틸콩 가루를 조금 더하고, 대체 감미료 알룰로스로 단맛을 낸 제품이었다. 세계 최초인 것 같은데 선례가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맛이 없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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