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가본 적 없는 길을 선택하는 용기… 고전이 주는 교훈

1 week ago 9

고전소설 ‘최척전’ 원작으로 만든
연극 ‘퉁소소리’의 등장인물 ‘옥영’
전쟁으로 인해 타국에 끌려갔지만
귀향을 목표로 삼고 고난 견뎌내
비극적 서사가 현실에 위로 되기도

연극 ‘퉁소소리’ 중 전쟁을 피해 남편과 헤어져 해외를 떠돌던 옥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연극 ‘퉁소소리’ 중 전쟁을 피해 남편과 헤어져 해외를 떠돌던 옥영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서울시극단 제공
지난달 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내린 연극 ‘퉁소소리’는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 부문 작품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퉁소소리’ 원작 고전소설 ‘최척전’은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평면적인 구조, 권선징악 주제를 다룬 다른 고전소설과 달리, 전쟁을 겪은 개인의 고통과 재회의 서사가 짜임새 있게 드러나 고등학교 국어, 문학 교과서에도 많이 수록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621년 조위한이 지은 한문 소설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굵직한 한국사의 아픔 속에서 백성들이 겪었던 고난을 ‘최척’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전쟁, 포로, 무역 등의 소재를 다양하게 다루고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개별 서사에도 매력을 부여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든다”는 반응도 보입니다.

고전 속 삶에서 발견하는 묵직한 감동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최척전’. 16세기 말 17세기 초 전란의 시대를 살아간 최척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규장각 제공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최척전’. 16세기 말 17세기 초 전란의 시대를 살아간 최척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규장각 제공
전쟁은 역사의 회오리바람입니다. 개인은 그것을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최척은 굵직한 두 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고, 명나라에도 끌려가기도 하고 만주족의 포로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고비를 느낄 때마다 최척은 퉁소를 붑니다. 자신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서 부는 퉁소는 허탈한 마음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나 여기 살아있소. 나도 인간이오’라고 말하는 읊조림 같습니다.

부인 ‘옥영’은 고전소설에서 드문 자주적이고 명석한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일본에 끌려가지만, 지혜를 발휘해 남장을 하고 상선에서 일을 하며 거래차 들른 안남(베트남)에서 남편과 상봉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다시 갈라놓습니다.

소설의 끝에서 옥영은 결단을 내립니다. 남편과 헤어지고, 이미 타국에서 자리를 잡은 그녀는 갑자기 조선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남편이 고향인 남원에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 부부를 설득해 배를 띄웁니다.

먹고살 만한 타국을 떠나 그녀를 이 모진 뱃길로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남편에 대한 사랑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요. 가보지 않고 포기하며 그냥 살 수만은 없었던 인간적인 고뇌 때문이었을까요. 옥영은 반드시 고향으로 가겠다는 큰 목표를 삶의 방향으로 정해 두고 매일 고난을 견딥니다. 옳은 방향성은 간직하고 사는 것, 앞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의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이 아닐까요. 삶의 존엄성이란 매일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닐까요.

카타르시스로 마음 씻으며 느끼는 삶의 존엄성

그리스어에서 온 ‘카타르시스’는 비극 속 등장인물에 연민과 공포를 느끼는 과정에서 마음이 정화되고 쾌감을 느끼는 일을 의미합니다.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를 보며 ‘카타르시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최척과 옥영이 겪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린 불행은 그들이 막을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의 삶도 그러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우리들은 작품에서 만나는 인물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공포를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독자 자신의 삶도 다시 돌아보게 되지요. 옳은 길이 무엇인지 알지만,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목표를 향해 걷겠다고 다짐하면서 주저앉아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기회도 얻습니다.

삶의 목표에 먼지가 앉아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비극을 보는 건 어떨까요. ‘오이디푸스왕’ 같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배삼식의 희곡 ‘3월의 눈’ ‘먼 데서 오는 여자’ 등을 읽으며 카타르시스가 주는 마음의 정화와 쾌감으로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 보면 좋겠습니다. 비극을 통해 운명처럼 다가온 불행을 한 개인이 어떻게 겪어내는지 들여다보면서 삶의 존엄성을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꿈이 없는 것 같아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요.” 이럴 때 고전은 나침반이 됩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을 보고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다치거나 울고, 좌절하면서 주는 메시지를 경청해 보기를 권합니다.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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