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 결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암호화폐 관련 기업 주가가 급등했고, 한국에서도 기업과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연 미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도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지, 과거 신종 파생금융상품이 남발돼 금융위기로 이어진 전철을 되풀이할지 냉정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처음 도입할 때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수수료와 거래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새로운 금융질서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물 자산, 부가가치와는 무관한 통제 불가능한 디지털 투기자산 시장이 형성됐다. 이런 실망과 부작용을 극복한 새로운 형태의 암호화폐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일가가 내세운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기존 암호화폐가 희소성 외에 뚜렷한 가치 기반이 없던 것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실물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고정시켜 안정성을 확보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금융거래 수수료를 거의 없애준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20%를 웃도는 정부 부채와 7%를 넘는 재정적자 탓에 미국 재무부 채권의 신뢰도가 민간기업 채권보다 낮아진 위기 국면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부 채권을 사실상 무한히 흡수해 줄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과 확산은 불가피한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물론 트럼프 일가가 직접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든 만큼 트럼프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도 과연 비슷한 상황일까.
블록체인 기술이 우리 금융산업과 결제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금융결제 시스템의 공공성과 대외 충격에 취약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할 때 미국식 스테이블코인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스테이블코인이 효율적 결제수단의 범위를 넘어 비트코인처럼 투기적 자산 성격을 띠도록 설계될 경우 결제시스템은 물론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리를 담당하는 기업은 자산 차익거래 유인이 없고 금융당국 감독 아래에 있어야 하며 제도 도입은 기존 제1금융권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올해 1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57조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차익 실현이나 해외 불법 송금을 위한 거래라는 시장의 추정을 고려할 때 스테이블코인을 비트코인과 같은 투기적 자산이 아니라 효율적 결제수단으로 인식시키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또 스테이블코인이 범죄나 지하경제의 결제수단인 블랙머니로 사용될 뿐 아니라 불법 외환거래 창구로도 활용되고 있는 만큼 이런 불법 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정밀한 제도적·기술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무제한 거래가 허용될 경우 외환시장과 국내 금융시장 교란과 불안정은 불 보듯 뻔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낙오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명백히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준비 없이 서둘러 남을 따라가는 대가는 지난 외환위기를 통해 이미 충분히 치렀다. 더 이상의 반복은 없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새로운 기술 도입이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안정과 신뢰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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