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아랑곳없이 현금 뿌리고
시기 부적절한 경제 관련법 통과시키고
민주당 말 안 들은 정부 부처 다 없애고
미국에는 비자 요구도 못 한 ‘중도·실용’
정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아니 써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이 말하는 재정 정책은 투자를 일으켜서 간접적으로 소비 수준을 높이는 것이지 직접 주머니에 돈을 꽂아 주는 게 아니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현금 뿌리기는 물가 상승을 통해 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앗아가기 때문에 경제 정책이 아니라 나쁜 정치인 포퓰리즘일 뿐이다.
과거 같으면 현금 뿌리기에 거품을 물었을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일본 사례로 물타기를 하더니 이제 개정 상법을 비롯해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이 줄줄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잘해 보려 했는데 정청래 민주당 대표 때문에 과격해진다며 화살을 정 대표 쪽으로 돌리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논란의 법안들은 모두 이 대통령이 대표일 때 통과시켰다가 거부된 것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정 대표 자신이 “악역을 맡겠다”고 말했듯이 명청대전(明淸大戰)이니 하는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다. 사실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정치적으로는 그러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일 때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짜고 치는 악역을 맡는 대신 논평질이나 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경제적 양심이 있으면 재난 사태가 아닌 한 인플레이션 시기에 현금을 뿌릴 수 없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처를 떼 내 국무총리실로 옮기는 건 현금 뿌리기 예산을 기재부 관료들의 경제적 양심에 의한 제한마저 받지 않고 맘대로 짜겠다는 것이다. 이미 내년 예산안을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8.3% 다음으로 높은 8.1%를 늘려 짰다. 현금 뿌리기의 경기 진작 효과란 없지는 않겠지만 미미해서 임기 말까지 마중물만 퍼붓다 끝나고 인플레이션만 남을 수 있다. 전쟁 다음으로 크게 재산을 앗아가는 것이 인플레이션이다. 전쟁은 눈에 보이게 앗아가지만 인플레이션은 눈에 안 띄게 앗아가고 누구보다도 현금 자산뿐인 서민의 돈을 앗아간다.
검찰 개조에 대해 이 대통령은 신중론을 폈지만 말뿐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검찰 주무 장관으로서의 생색이었을 뿐이다. 이 사람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일 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민주당의 당무는 별개라고 말하면서 점잖은 척은 다 하더니 몰래 옥중의 정진상과 김용을 특별 면회한 데서 이미 드러났다.
중수청을 행안부에 두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잡다한 수사기관의 병치다. 수사기관을 재편한다면 자치경찰을 확대해 가능한 한 많은 수사를 자치경찰에 넘기고 중대 사건은 국가수사본부의 것이든 공수처의 것이든 합쳐야 하는데도 오히려 중수청까지 만들었다. 졸렬하기 짝이 없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윤호중 행안부 장관과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공동 발표했는데 무슨 명청대전인가. 개편의 목적은 부처가 자기들 말을 듣지 않을 때 어떤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는지 당정이 합심해 보여준 것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내쫓기 위해서는 아예 방통위를 없앴다. 위인설관(爲人設官) 아닌 위인폐관(爲人廢官)은 처음이다.이 대통령의 외교 노선은 미국에는 ‘생큐’, 중국에는 ‘셰셰’ 하는 것이다. 외교에서 그게 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시진핑은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북한 김정은을 세우는 것으로 답했다. 미국과는 일본보다 못한 협상을 해놓고는 실용까지 놓친 것이 LG에너지솔루션 직원 300명 구금 사태다. 대기업을 압박해 또다시 천문학적으로 투자 확대 약속을 해놓고는 투자 확대의 조건으로 당연히 요구했어야 할 비자 등 실용적인 문제들은 소홀히 했다가 당한 것이 작금의 사태다. 강릉에서 시장을 앞에 두고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 줄도 모르고 원수(原水) 비용 운운하며 아는 체한 사람이 미국에서는 왜 그랬나 모르겠다. 기업이 노란봉투법 등에 대해 그렇게 우려를 표명하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하지 않았던가. 비자 하소연도 그랬을 것이다. 기업이 대통령의 봉인가. 산업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을 경질해도 시원찮을 외교 참사다.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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