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성장이란 통과하는 것
소녀 렌, 부모 별거로 분열 체험… ‘비우호적인 세상, 뭘 해야 하나’
불놀이 의례, 타인 호의 접하며 … 부모 용서하고 청소년기 통과해
성장은 문제 해결 아닌 통과 과정… 통과하는 방식이 한 사회의 수준
그러나 부모의 결별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렌이다. 하나여야 하는 집이 ‘두 개의 집’으로 분열된 것이다. 청소년에게 분열된 집은 곧 분열된 세계다.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소마이 감독은 말했는데, 바로 그 세계가 분열돼 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를 재결합시킬 힘 같은 것은 렌에게 없다. 남은 것은 이 분열된 세계와 더불어 사는 일뿐이다. 청소년 렌은 이 시련을 통과해야만 어른이 될 것이다.
부모의 결별은 단순히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렌의 사회생활, 즉 학교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영악하다. 누가 부잣집 아이인지, 누가 화목한 집 아이인지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에 맞춰 상대를 대한다. 이를 잘 아는 렌은 부모가 결별했다는 사실을 숨긴다. 더 이상 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됐을 때 렌은 수업 중에 책상 위 알코올램프를 쳐서 넘어뜨린다. 불은 번져 교실을 태우기 시작한다. 학교로 소환된 렌의 엄마는 부르짖는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실수로 그런 거라고 말해줘!” 그러나 렌은 이 세상을 불태우고 싶었을 것이다.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전체를 불태울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전체를 재건할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원작소설 ‘두 개의 집’과 영화 ‘이사’는 정확하게 이 질문을 제기한다. 답은 무엇인가? 그 답을 담고 있는 영화 후반부는 원작 소설에 없다.
한 사회의 수준은 종종 어떤 문제를 발본색원한 결과보다는, 그 문제의 숲을 통과하는 방식에서 더 잘 드러난다. 렌은 우연히 만난 노부부의 집에서 간식을 대접받으며, 그들의 자식이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노부부는 일찍 죽은 자식에게 하듯 렌에게 달콤한 간식을 베푼다. 시원한 물줄기 같은 그 호의가 렌이 입은 청소년기 화상(火傷)을 달래줬다고 나는 믿는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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