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이사’하는 것이라면… 사회의 格은 이사하는 방식에 달렸다[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2 days ago 1

〈107〉 성장이란 통과하는 것
소녀 렌, 부모 별거로 분열 체험… ‘비우호적인 세상, 뭘 해야 하나’
불놀이 의례, 타인 호의 접하며 … 부모 용서하고 청소년기 통과해
성장은 문제 해결 아닌 통과 과정… 통과하는 방식이 한 사회의 수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올여름 극장가에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옛 영화가 세 편이나 상영되었다. ‘태풍클럽’(1985년), ‘여름정원’(1994년), 그리고 ‘이사’(1993년). 세 편 모두 청소년기의 체험을 다룬 필견의 걸작들이지만, 초점은 조금씩 다르다. ‘태풍클럽’은 광기의 체험을, ‘여름정원’은 죽음의 체험을, ‘이사’는 분열의 체험을 다룬다. 광기나 죽음, 분열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것들이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인지하게 되는 것은 대개 청소년기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 포스터. 부모의 갈라섬을 겪는 소녀 렌을 통해 성장이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 포스터. 부모의 갈라섬을 겪는 소녀 렌을 통해 성장이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사’가 분열을 다뤘다는 사실은 ‘두 개의 집’이라는 히코 다나카의 원작소설 제목에 분명히 드러난다. 초등학교 6학년 소녀 렌은 어느 날 부모의 별거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 아빠는 한때 “친구여, 새벽녘 어스름 속에서” 같은 운동가요를 불렀던 전공투 세대다. 세월은 흐른다. 결혼으로 직장을 떠나 내조하던 엄마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집안 경제에도 공헌하지 못하는 주제에….” 별거의 이유가 어디 이것뿐이었으랴. 어쨌건 두 사람은 결별에 합의하고, 엄마는 다시 자기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렌의 입장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의 결별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렌이다. 하나여야 하는 집이 ‘두 개의 집’으로 분열된 것이다. 청소년에게 분열된 집은 곧 분열된 세계다.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소마이 감독은 말했는데, 바로 그 세계가 분열돼 버린 것이다. 엄마 아빠를 재결합시킬 힘 같은 것은 렌에게 없다. 남은 것은 이 분열된 세계와 더불어 사는 일뿐이다. 청소년 렌은 이 시련을 통과해야만 어른이 될 것이다.

부모의 결별은 단순히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렌의 사회생활, 즉 학교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영악하다. 누가 부잣집 아이인지, 누가 화목한 집 아이인지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에 맞춰 상대를 대한다. 이를 잘 아는 렌은 부모가 결별했다는 사실을 숨긴다. 더 이상 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됐을 때 렌은 수업 중에 책상 위 알코올램프를 쳐서 넘어뜨린다. 불은 번져 교실을 태우기 시작한다. 학교로 소환된 렌의 엄마는 부르짖는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실수로 그런 거라고 말해줘!” 그러나 렌은 이 세상을 불태우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전체를 불태울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전체를 재건할 힘이 없는 청소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원작소설 ‘두 개의 집’과 영화 ‘이사’는 정확하게 이 질문을 제기한다. 답은 무엇인가? 그 답을 담고 있는 영화 후반부는 원작 소설에 없다.

렌이 “날 혼자 두지 마!”라고 외쳤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껴안으며 보내주는 모습.

렌이 “날 혼자 두지 마!”라고 외쳤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껴안으며 보내주는 모습.
영화 후반부에 렌의 가족은 비와(琵琶) 호수로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렌의 아빠는 재결합을 시도하지만 허망하게 실패한다. 그 모습을 보던 렌은 축제가 한창인 비와 호수 쪽으로 달려간다. 그 축제 속에서 세계는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청소년의 불장난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반복해 온 의례로서 불놀이였다. 그 불은 알코올램프보다 거대하지만, 많은 이들의 조율된 노력 속에서 타오르고 있기에 사람들을 해치거나 죽이지 않는다. 정처 없이 헤매던 렌은 어느 골목길에서 노인이 뿌리던 물에 젖게 되고, 그 집에서 잠시 몸을 말리고 간식을 얻어 먹는다. 허기를 달랜 렌은 기운을 내어 불놀이 축제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마침내 호숫가에 도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불타는 청소년기를 통과 중인 자신의 모습을 환상처럼 보게 된다. 바로 이 여행의 체험이 렌을 바꾼다. 여행에서 돌아온 렌은 부모의 결별 사실을 친구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힌다. 자신의 세계가 분열됐음을 공식적으로 수긍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상급학교에 진학한 렌은 엄마에게 꽃을 주고 아빠의 어깨를 토닥인다. 즉, ‘이사’는 성장의 서사인 동시에 어쩔 수 없었던 부모를 용서하는 서사이기도 하다. 결국 성장이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이사’하는 것이다. 지나가고 통과하는 것이다. 이것을 문제의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해결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세상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한 변화이기도 하다. 삶이란 해결돼야 할 문제가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청소년기의 어두운 숲을 통과하고 나면, 이제 어른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어른의 세계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비와 호수의 불놀이 축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상호 협조 속에 조율된 의례는 그 통과의 과정을 덜 야만적이고 더 심미적으로 만들 것이다.

한 사회의 수준은 종종 어떤 문제를 발본색원한 결과보다는, 그 문제의 숲을 통과하는 방식에서 더 잘 드러난다. 렌은 우연히 만난 노부부의 집에서 간식을 대접받으며, 그들의 자식이 오래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노부부는 일찍 죽은 자식에게 하듯 렌에게 달콤한 간식을 베푼다. 시원한 물줄기 같은 그 호의가 렌이 입은 청소년기 화상(火傷)을 달래줬다고 나는 믿는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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