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암반 규제 깨는 日, 우리도 서둘러야

6 days ago 5

[서정환 칼럼] 암반 규제 깨는 日, 우리도 서둘러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출범 이후 도쿄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주말 사상 처음으로 52,000을 돌파했다. 다카이치가 자민당 총재에 오른 지 한 달도 안 돼 15% 가까이 급등했다. ‘아베노믹스 시즌2’로 불리는 ‘사나에노믹스’에 거는 뜨거운 기대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금융완화·재정정책을 계승하고 ‘강력한 경제 성장’ 실현을 위해 첨단 산업 육성을 천명했다. 그는 최장수 총리인 아베 옆에서 8년9개월간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아베노믹스를 체득했다. 자신이 말한 첨단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일명 ‘암반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베는 재임 기간 90여 차례에 걸쳐 ‘규제개혁(추진)회의’를 주재했다. 한두 달에 한 번꼴이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 ‘푸념 청취’ 자리가 아니었다. 규제 개혁의 방향이 정해지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원격 진료, 숙박 공유를 허용했고 자율주행 상용화와 데이터 활용, 로봇 배달을 위해 법과 제도를 신속히 정비했다. 한국의 1위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상용화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 이유다. 한국에선 ‘안 되는 일’이 일본에서는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취임하자마자 후생노동상에게 ‘노동시간 규제’ 완화 방안 마련을 지시하며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사 합의 시 월 100시간, 연간 720시간까지 허용한 시간외근로 제한마저 풀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14개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은 이처럼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미래 산업 성장의 걸림돌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있다.

한국도 역대 정권마다 규제 완화를 외치곤 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경쟁력강화회의부터 규제개혁점검회의(박근혜), 규제혁신점검회의(문재인), 규제혁신전략회의(윤석열)까지 정부마다 비슷한 이름의 회의가 예외 없이 열렸다. 그럴 때마다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모래주머니’ 같은 규제 상징어가 탄생했지만 성과는 미미하거나 공회전에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초부터 규제 개혁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거미줄 규제를 걷어내겠다”며 “무조건 ‘안 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일단 돼’라는 쪽으로 마인드를 바꾸라”고 공직사회에 지시했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도 “규제 개선에 앞장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를 열어 AI, 로봇, 바이오 등 미래 산업 분야의 규제 개선을 논의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아베 내각 때와 달리 규제 개혁 여건은 한국이 일본보다 오히려 낫다는 사실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일본유신회와 연합으로 겨우 과반을 확보했지만 한국은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실용적 개혁 의지가 강력하기에 집권당만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걸림돌도 없다.

한국은 모든 산업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관계다. 우리가 ‘거미줄 규제’에 묶여 머뭇거리는 사이 일본은 ‘암반 규제’를 깨부수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공허한 레토릭이 아니다. 규제 혁파에 대한 비장한 각오를 실질적인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제2, 제3의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정부는 거미줄 규제를 완전히 걷어내는 확실한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