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달리며 러너 안전 돕는 ‘레이스 메딕’을 아시나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 week ago 6

최창휴 교수가 인천 가천대 길병원 근처 승학산에서 응급처치 키트 등을 지닌 채 질주하고 있다. 운동 문외한이던 최 교수는 자전거와 마라톤에 이어 트레일러닝에 빠져 산을 달리다 다친 대회 참가자들을 돕는 레이스 메딕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최창휴 교수가 인천 가천대 길병원 근처 승학산에서 응급처치 키트 등을 지닌 채 질주하고 있다. 운동 문외한이던 최 교수는 자전거와 마라톤에 이어 트레일러닝에 빠져 산을 달리다 다친 대회 참가자들을 돕는 레이스 메딕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최창휴 가천대 길병원 교수(56·심장혈관흉부외과)는 가장 싫은 게 운동이었다. 축구와 야구 같은 스포츠 경기도 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하며 다치거나 위험에 빠진 러너들을 돕는 레이스 메딕(race medic)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변신이다.

“약 15년 전 잠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캐나다로 가족들과 연수를 갔는데 돌아올 시점에 아이들이 남겠다고 한 거죠. 쉬는 날 할 일이 없으니 지루해서 집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서 삶이 바뀌었죠.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길을 잘 만들어 놔서 전국 어디든 자전거로 갈 수 있었어요. 서울∼부산 종주는 물론이고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습니다.”

최 교수가 자전거를 열심히 탄다는 소문이 나자 이 대학 자전거동아리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과 주기적으로 라이딩을 하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듀애슬론(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나갔다. 그는 “자전거와 달리기는 완전히 달랐다. 500m나 1km는 달리겠는데 5km 넘으면 힘들었다.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2년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병원 주변을 달렸다. 3개월 훈련하고 10km 경주에 출전했고 이어 하프코스도 뛰었다. 1년 뒤 가을 4시간 50분에 42.195km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그때부터 동아마라톤 같은 메이저 대회를 섭렵했다. 풀코스 최고 기록은 3시간 50분.

“로드 마라톤에 흥미가 떨어질 때쯤 지인이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알려 주는 겁니다. 처음에는 ‘도로 달리기도 싫은데 무슨 산을 달리냐’고 했죠. 그래도 그 친구는 산 달리기가 더 재밌다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러너의 성지라는 서울 남산을 달려 봤습니다. 색다른 느낌이었어요. 올라갈수록 풍광이 좋았고, 산길이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지루하지 않았죠.”

2016년부터 산을 달렸다. 도로보다 산이 더 좋아졌지만 병원 일 때문에 근처 도로나 공원에서 운동해야 할 때도 많았다. 2019년 말부터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했다. 2023년 10월 트랜스제주 대회에서 100km를 19시간 44분에 완주했다. 코리아 50K, 장수트레일레이스 70K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홍콩 등 국내외 대회 중장거리를 꾸준히 뛰었다. 지금까지 100km만 5회 완주했다. 기록은 20시간 안팎. 이달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린 트랜스제주 100마일(160km)도 달렸다. 이제는 ‘달리는 철각 의사’로 불린다. 매일 새벽 5∼10km를 달리고 주말에는 대회에 출전하거나 장거리 훈련을 한다.

“달리면서 트레일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봤습니다. 가벼운 찰과상과 골절 같은 외상성 손상부터 탈진, 심혈관 이상처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최근 한 대회에선 30대 러너가 심정지로 숨졌습니다. 레이스 중간중간 체크포인트(CP)에 응급요원이 있지만 산길에선 바로 투입되기 쉽지 않아 참가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제가 달리는 대회에서는 주최 측과 협의해 레이스 메딕 역할을 합니다. 혼자선 안 되겠다 싶어 올해부터는 의사들을 모아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레이스 메딕은 대회 스태프가 아니고 참가자이면서 응급 상황에 러너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다. 레이스 메딕이 되려면 중급 코스 이상의 트레일러닝 완주 경험이 있어야 한다. 10명에서 15명의 의료진(의사 한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산악구조대원 소방공무원 등)이 기본 의료 장비를 메고 달린다.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무전을 받으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레이스 메딕이 뛰어가 돕는다. 올해는 경기 동두천 코리아 50K를 비롯한 4개 대회에서 시범 운영하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참가자 스스로 위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먼저 위험 구간을 비롯한 코스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조심하게 됩니다. 또 응급처치 키트, 서바이벌블랭킷 같이 대회 조직위원회가 지참하라고 한 것은 꼭 준비해야 합니다. 날씨 변화에 따라 극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치면 배번에 적혀 있는 레이스 메딕 휴대전화로 전화 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양종구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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