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필자도 직접 사용해 봤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AP통신 사진을 업로드했다. “두 사람의 표정과 동작을 반대로 바꿔줘”라고 프롬프트(명령문)를 입력하자 몇 초 만에 정반대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얼굴 표정과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현장에서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나노 바나나의 가장 큰 강점은 주요 피사체의 얼굴이나 캐릭터를 기억해 상황에 맞게 재현하는 능력이다. 기존 AI 모델은 프롬프트에 맞춰서 그럴듯하게 이미지를 생성해 내긴 하지만, 같은 인물을 여러 장면에 반복 등장시키다 보면 얼굴이나 체형이 바뀌는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인물과 배경의 경계선이 부자연스럽거나 간혹 6개의 손가락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었다. 동적인 이미지를 편집할 때는 특히 제약이 많았다. 낮은 완성도 때문에 광고나 디자인 등 상업적 영역에서 활용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나노 바나나는 어떤 편집을 하더라도 원본의 특성과 개성을 잃지 않는다. 다른 각도나 포즈를 요청해도 인물의 얼굴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합성 티’가 확연히 줄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전문가들은 나노 바나나의 등장으로 ‘포토샵의 종말’이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출, 색온도, 레이어 합성 등 포토샵의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과정이 사라지고, 간단한 자연어 요청만으로 세밀한 편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술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진입 장벽도 낮췄다. 현재까지의 성능과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나노 바나나는 이미지 제작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미지 AI 모델이 고도화되고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초상권이나 저작권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이미지의 진위를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최근 기사화됐던 미 소셜 트레이딩 앱 ‘애프터아워’의 창업자 케빈 쉬가 블랙핑크 멤버 리사와 함께 찍었다며 공개한 사진이 나노 바나나로 단 몇 초 만에 합성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사진기자인 필자도 감쪽같이 속았다.
미 소프트웨어 리뷰 사이트인 ‘포투토리얼’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하루에 공유되는 사진이 140억 장 이상, 2024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사진은 1조9400억 장에 이른다. AI가 생성한 거대한 양의 사진이 전 세계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돼 이를 활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한다면 가짜가 원본이 되고, 원본이 가짜가 되는 ‘이미지 카오스’ 시대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다행히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AI 생성물에 대해 제작 표시 권고안 및 법안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6년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AI 기업들 역시 생성된 이미지에는 워터마크를 표시하며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지 위에 덧씌우는 워터마크나 메타정보에 표시하는 AI 생성 라벨 모두 쉽게 삭제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 실효성에도 의문이 든다. 미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AI 생성 콘텐츠는 자동 탐지 도구마저 속일 정도로 이미 정교해졌다”고 경고했다.AI 이미지 생성 기술 자체는 창작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다. 하지만 타인의 권리 침해, 각종 범죄에 악용하거나 선정·선동의 수단으로 저널리즘에 해악을 끼칠 가능성도 높은 게 사실이다. 결국 인류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줄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의 윤리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 진보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홍진환 사진부 차장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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