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병원 환자 10명 중 4명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왔고 이들이 쓴 진료비는 11조 원에 육박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병원에서 진료받은 1503만 명 중 623만여 명(41.5%)이 원정 진료를 위해 온 타지 환자들이었다. 서울 안에서도 중증 질환을 주로 치료하는 5대 대형 병원이 위치한 강남, 송파, 종로, 서대문, 서초구에서 타지 환자의 진료비가 많이 청구됐다. 지역 병원에서 최종 치료가 힘든 중증 질환자들이 서울 원정 진료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대형 병원 인근에 환자와 보호자가 단기 숙박하는 ‘환자방’이 성업 중일 정도로 서울 원정 진료 비율은 10년간 꾸준히 늘었다. 치료에만 전념해도 힘에 부칠 환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서울까지 수백 km를 이동하며 이에 따른 이동 시간과 교통비 부담, 체력적 소모 등의 고통을 겪는다. 어렵게 치료를 받고 퇴원하더라도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없어 불안에 떨어야 한다. 원정 진료에 동행하는 보호자 역시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살고 있는 지역의 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은 세종, 경북, 충남, 전남 순으로 낮았다. 의사, 시설, 장비 등 의료 인프라가 집중된 대도시와 달리 농산어촌 지역은 수억 원을 줘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병원들은 시설, 장비 투자를 꺼리는 탓이다. 서울과 지역의 의료 인프라 격차가 의료 이용의 격차로 이어지고, 다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수명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는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문제다.
환자들의 서울 쏠림 현상으로 지역 병원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지역 의료는 붕괴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을 지나며 격무를 버티지 못한 지역 병원 의사들이 상당수 이탈했다. 수술실, 응급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개점휴업’ 상태인 병원들이 늘어난다. 공공의료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민간 병원에만 의존해선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없다. 아프면 내가 사는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역에 남을 의사를 양성하고 의료 자원이 지역별 수요에 맞게 균형 있게 공급되도록 수가와 인센티브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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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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