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회의 상원 격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함에 따라 일본 정국이 격랑에 휩싸였다. 임기 6년의 248명으로 구성된 참의원은 3년마다 절반인 124명을 새로 뽑는데, 이번 선거에서 자민·공민당 연립 여당은 47석을 얻는 데 그쳤다. 기존의 75석을 합해 연립 여당의 참의원 총의석은 122석으로 과반(125석)에 못 미친다. 자민당 연합은 지난해 10월 하원 격인 중의원 선거에서도 패배해 과반 유지에 실패한 바 있다. 자민당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과반을 지키지 못한 것은 1955년 창당 이후 7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선거 패배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국정 동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 퇴진 위기에 처했다. 자민당에서 유일하게 파벌을 유지하고 있는 아소 다로 최고 고문이 이시바의 총리직 유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시바는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일본이 전쟁 책임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지한파로 꼽힌다. 그러나 이시바가 실각할 경우 후임 물망에 오르고 있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보수 성향 인물들이다. 특히 지난해 9월 자민당 간사장 선거에서 아소 고문의 지원을 받으며 이시바와 맞붙은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의 행보가 주목된다. 다카이치 의원은 아베 신조 전 총리 계열의 대표 주자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에서 극우 성향으로 논란을 빚어 왔다.
이시바의 거취와는 별개로 향후 일본 정계의 우경화 기조는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인 등 외국인 혐오와 ‘일본인 퍼스트’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MAGA’를 연상시키는 참정당의 돌풍이 이를 방증한다. 참정당은 종전 1석인 참의원 의석이 이번에 15석으로 불어나면서 법안 제출 권한을 획득했다. 일본 정계의 주도권 변화는 트럼프 1기 때 문재인-트럼프-아베로 짜인 한·미·일 관계의 복사판 우려를 낳는다. 한·미 동맹은 삐걱대고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달은 게 그때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등 난제들이 버티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근심거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