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기술을 유출해 해외로 넘기려던 SK하이닉스 협력업체의 전직 직원이 구속됐다. 중국으로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된 그는 올해 초 퇴사하면서 외부 유출 목적으로 관련 기술을 확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출된 기술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HBM의 핵심 공정이다.
경찰과 검찰이 이번 기술 유출범에게 적용한 혐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 국외 누설)이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국가 기간산업과 관련된 첨단 기술일 경우엔 형량이 가중된다. 다행히 최근엔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 검찰이 ‘현대판 매국노’로 규정해 수사를 강화하고 법원도 비교적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초엔 항소심 재판부가 SK하이닉스의 기술을 빼돌린 중국 국적의 전 직원에게 징역 5년과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은 징역 1년6개월이었는데 항소심에서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형량을 대폭 높였다. 2월에는 1조6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반도체 핵심 기술을 29억원을 받고 중국 회사에 넘긴 전 삼성전자 부장이 징역 7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기술 유출 범죄가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2022년 12건이던 해외 기술 유출 적발이 지난해 27건으로 2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경제 안보를 지키려면 첨단기술 유출에도 ‘간첩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안보법’과 ‘반(反)간첩법’을 개정해 처벌을 대폭 강화한 중국은 물론 미국은 ‘경제스파이법’, 영국은 ‘국가안보투자법’으로 산업 스파이 행위를 엄벌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 외에는 처벌할 수 없어 핵심 기술 유출에 사실상 무방비다. 간첩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 발의돼 있는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 우선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산업 스파이 행위는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국익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