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강의를 수강하는 것만으로 이력서에 ‘스펙’을 추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주립대(SJSU) 캠퍼스에서 만난 컴퓨터시스템 전공생 안셀 개딩건 씨(22)는 “이 강의를 들으면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인증을 취득할 기회가 주어져 취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듣는 ‘클라우드 파운데이션’은 SJSU가 AWS와 손잡고 운영하는 산학협력 강의다.
AWS는 교육 지원 프로그램인 ‘AWS 아카데미’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SJSU에 최신 커리큘럼과 강의 자료는 물론 클라우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SJSU는 이 강의를 정규 과정에 포함해 모든 컴퓨터시스템학과 학생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AI 인재에 목마른 빅테크들
미국에서 빅테크와 대학 간 산학협력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 교육을 통해 학생의 취업 문을 넓혀주려는 대학과, 자신들의 기술 요구에 맞게 사전 훈련된 인재 풀을 넓히려는 기업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클라우드 파운데이션 강의를 하는 리처드 그로테구트 SJSU 교수는 “AWS 아카데미를 수료한 학생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어 입사 후에도 업무 관련 추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며 “취업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입소문에 6년 전 200명이던 강의 수강생이 이번 학기엔 600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SJSU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립대(CSU)는 산학협력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미국 최대 공립대학 시스템인 CSU는 지난 2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오픈AI, AWS 등 10개 기업과 손잡고 ‘AI(인공지능) 전환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SJSU 등 CSU를 구성하는 23개 대학의 학생 46만 명과 교직원 6만3000명 모두를 대상으로 AI 실무 교육을 해 AI 인재를 양성하는 게 핵심이다. 각 기업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은 챗GPT 등 각종 AI 도구를 무료로 쓸 수 있다.
빅테크와 대학의 협력은 인재 확보가 최우선 목표다. AWS 아카데미는 연계 강의를 수강하면 공식 기술 인증을 취득할 수 있다. 시스코는 SJSU와 손잡고 컴퓨터시스템학과에 최신 네트워크 장비를 갖춘 실습실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학업과 유급 실무 경험을 병행하는 견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레드 바레즈 SJSU 기계공학과 학과장은 “우리 학생들을 고용할 기업이 쓰는 기술과 필요한 인재상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R&D 삭감의 역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역설적으로 대학이 기업과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 대학 R&D 보조금의 큰손인 국립보건원(NIH)과 국립과학재단(NSF)의 2026회계연도 예산은 각각 전년 대비 42.6%, 55.6% 줄었다.
정부가 인재 양성에 손을 놓다시피 하자 빅테크들이 그 틈을 메우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의 94%는 대학이 학생에게 AI 기술을 교육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학과의 공동 연구가 혁신 기술 개발의 리스크를 분산할 뿐만 아니라 특허·논문 등 지식재산권(IP) 확보에 유리하다는 점도 기업이 대학으로 향하는 유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대학의 AI 교육을 ‘실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와 관련해 국내 유일의 AI 활용능력 검정시험인 AICE(에이스)와 같은 자격증을 대학 교육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공대조차 학과별로 수준이 달라 통일된 AI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라며 “이 과정에서 기업과의 산학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