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야구스타’ 김건우 “햄버거 만드는 지금이 전성기”[이헌재의 인생홈런]

1 week ago 7

왕년의 야구 스타 김건우는 요즘 햄버거집 사장님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김건우 제공

왕년의 야구 스타 김건우는 요즘 햄버거집 사장님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김건우 제공

이헌재 스포츠부장

이헌재 스포츠부장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1)는 투타 겸업의 대명사다. 오타니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서도 투수, 타자로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가 몇몇 있었다. ‘비운의 야구 스타’ 김건우(62)도 그중 한 명이다.

선린상고 시절 그는 박노준과 함께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마운드에선 돌처럼 묵직한 공을 던졌고, 타석에선 대포알 같은 타구를 쏘아 올렸다.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해서도 승승장구했다. 데뷔전부터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18승 6패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했다. 신인왕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하지만 이듬해 9월 불의의 교통사고 이후 ‘투수’ 김건우의 인생은 사라졌다. 여자 친구를 데려다주다 뺑소니차에 치여 양쪽 팔과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김건우는 “10m 넘게 날아간 것 같다. 피를 흘리면서도 여자 친구 안부를 확인한 후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강속구를 잃어버린 그는 1992년 타자로 전향했다. 당당히 4번 타자로 최다안타 부문 1위를 질주했다. 하지만 빙그레와의 경기 중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려다가 장종훈과 충돌하면서 왼쪽 손목이 부러졌다. 몇 해 지나지 않아 ‘타자’ 김건우는 은퇴했다. 김건우는 이후 LG 투수코치와 리틀야구단 감독, 청담고 감독 등을 지낸 뒤 야구계를 떠났다.

한동안 그는 야구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하지만 요즘은 햄버거 패티를 구우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충남 태안 연포해수욕장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딴 수제버거집을 열었다. 김건우는 “서울살이에 지쳐 5년 전에 귀촌했다. 처음엔 고깃집에서 고기를 썰고 설거지도 했다. 농로를 까는 막노동도 했다”며 “그러다 손주도 태어나고 해서 고심 끝에 수제버거집을 열었다”고 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장사였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목이 좋은 데다가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주말과 여름 휴가철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다. 김건우는 “좋은 재료를 쓰니까 맛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자주 찾아주신다. 또 저를 응원했던 팬들 중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며 웃었다.

그는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아내 정재연 씨가 서빙을 한다. 교통사고 당시 여자 친구였던 정 씨는 이듬해 아내가 됐다. 김건우는 “처음에는 용돈이나 벌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말에는 주방에서 나오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며 “아내는 눈빛만 봐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어느덧 할머니가 됐지만 내게는 여전히 예쁜 사람”이라고 했다. 야구 선수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햄버거집 사장으로 사는 요즘 더욱 만족감을 느낀다. 김건우는 “야구를 하느라 딸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햄버거 판 돈으로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고, 손주에게 장난감도 사준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목표는 80세까지 패티를 굽는 것이다. 김건우는 “나와 아내 중 한 명만 아파도 장사를 할 수 없다. 지금처럼 80세까지 건강하게 햄버거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손님이 뜸할 때는 시간도 자유롭다. 중고 피아노를 사서 연습도 한다. 언젠가는 작사, 작곡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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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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