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 남편, 19년 만에 아빠된 사연…난임테크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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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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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 차례 진단 끝에 의료진도 고개를 저었던 그 순간 부부는 인공지능(AI)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컴퓨터는 수백장의 이미지를 분석했고 그 안에서 단 두개의 정자를 찾아냈다. AI는 19년간 멈춰 있던 부부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다.

지난달 31일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던 부부가 AI의 도움을 받아 임신에 성공한 사례가 국제학술지 '랜싯'에 공개됐다. AI로 난임을 극복한 첫 임상 사례다.

이들은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개발한 AI 기반 마이크로플루이딕(미세 유체역학) 시스템 ‘스타(STAR)’를 이용했다. 남성 환자의 정액 샘플을 촬영한 약 250만장의 이미지를 분석한 뒤 정자 7개를 찾아냈다. 이 중 운동성이 있는 정자 2개를 선별한 뒤 환자 부인의 난자에 주입했다. 두 개의 수정란은 모두 정상적으로 착상해 배아로 발달했고 이식 13일 만에 임신 반응이 나타났다. 임신 8주차 초음파에서는 태아의 심박수(분당 172회)도 관찰할 수 있었다.

무정자증은 남성 불임의 10~15%를 차지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고환조직을 일부 떼어내 정자를 채취하는 식의 침습적 수술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연구를 주도한 제브 윌리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AI로 몇 안되는 생식세포를 찾아 임신까지 성공한 세계 최초 임상 사례”라며 “난임 치료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AI와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이 도입되면서 난임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배아 선별 AI다. 기존에는 숙련된 임상배아 연구원이 현미경 아래에서 배아의 형태와 발달 속도를 눈으로 관찰하며 감에 의존해 착상 가능성을 판단했다. AI는 수천건의 영상 데이터를 학습해 배아의 미세한 형태 변화와 성장 패턴 등을 정성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통상 AI 진단 기법은 임상배아연구원이 단독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예측 정확도를 10~20%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 AI 기반 배아 평가 소프트웨어가 허가를 받으면서 상용화를 위한 길도 열렸다. 지난 9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스라엘 페어틸리티의 ‘클로에 블라스트’를 승인했다. 클로에 블라스트는 체외수정(IVF) 과정에서 배아의 성장 과정을 시간대별로 촬영한 영상을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각각의 배아가 착상 가능한 배반포 단계까지 도달할 확률을 예측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카이헬스가 분당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최적의 배아를 선별하는 AI 모델을 개발해 올해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로보틱스를 접목해 난임 치료 성공률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다. 멕시코 스타트업 컨시버블 라이프사이언스는 난자 동결부터 배아 생성까지 총 205단계에 달하는 IVF 전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 '오라(AURA)'를 개발했다올해 4월 해당 시스템을 활용해 처음으로 출산에 성공한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올해 9월 시리즈A에서 5000만달러(약 714억원)를 조달했다.

또 다른 배아 생성 자동화 시스템 개발사인 스페인 오버튜어 라이프는 난자 냉동과 배아 해동 과정을 자동화했다. 이들의 장비를 잉요하면 난자의 생존율을 기존 수작업보다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4월 2060만달러를 추가 조달하는데 성공해 누적 투자액 5700만달러를 확보했다.

난임 시장은 저출산·고령화 흐름에 맞물려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불임 시장의 규모는 올해 392억7000만달러로 2034년까지 855억3000만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결혼과 출산 시기가 늦어지면서 남녀 모두의 생식 능력이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영 차헬스케어 본부장은 “인공지능(AI)으로 난임 치료 성공률을 10%만 높여도 연간 1만 명 이상의 아이가 더 태어날 수 있다”며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생식의학 분야는 향후 의료 산업 내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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