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을 지운 평등주의의 허상소설 ‘얼굴의 정의’ 평등 허상 풍자
독재정권이 시민의 외모 평균화해
불평등 제거하려다 획일화만 남겨
국가가 모든 차이 교정하려다 보면
전체주의 위험, 자유 보장이 정의
그러나 강제적인 ‘베타화’는 오히려 그의 반항심을 키우고, 결국 정권에 맞서는 저항 단체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은 현대 복지사회의 약점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작가 앤서니 버지스도 이 작품을 “전후 영국 복지국가의 경향을 훌륭하게 투영한 소설”이라며 1939년 이후 영어권 최고의 소설 99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소설은 우리가 흔히 ‘정의는 곧 평등’이라고 믿는 관념을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굴을 평균화해 모두를 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정의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모는 부모의 유전자가 결정하는 선천적 조건, 즉 태생적 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사회는 큰 눈, 오뚝한 코, 갸름한 턱선 등 특정 외모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고 누군가는 이익을, 누군가는 불이익을 감수한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고자 아름다운 얼굴의 장점뿐 아니라 못생김이 주는 소외감까지 없애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외모의 평등이 실현된 사회에는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없다.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나는 부당함도 사라진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볼프강 케르스팅에 따르면 이러한 ‘평등주의적 정의의 정치적 프로그램’은 무작위로 분포된 미적 특성을 안면 성형을 통해 모든 사람을 균형 잡힌 얼굴로 재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정의가 실현된 사회에는 미적 평균만이 존재할 뿐, 개인의 신체적 개성은 사라진다. 태생적으로 잘생긴 사람이 연예인이 되며 누리던 특혜도 없어지고, 사회에는 균일한 특성을 지닌 평범한 얼굴만 남는다. ‘얼굴평등센터’는 자연이 만든 불공정을 제거해 미의 사회적 권력을 무너뜨리고자 하지만, 그 결과는 개성이 없는 모두가 똑같은 얼굴의 생산뿐이다.불평등의 문제는 얼굴뿐 아니라 경제적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흔히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삶의 출발선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르다. 양극화를 없애고 보편적 복지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부모 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과 저축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출발선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직접 나서 우연히 주어진 개인의 행운과 불운을 모두 수정하려는 시도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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