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 간 대화 복원의 場 된 경주
‘잠정적 휴전’ 속 美 고민과 中 자신감 확인
G2에 낀 韓, 기계적 ‘거리의 균형’ 벗어나
국익에 최적화된 외교 전략 일관되게 펴야
10월 31일∼11월 1일 열린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풀어놓은 한국 외교의 보따리를 앞으로 어떻게 알차게, 실용의 차원에서 주워 담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원래 큰 다자외교의 판이 벌어지면, 앞뒤로 다양한 양자외교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게 국제무대의 관행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APEC 기간 동안 총 13개국 정상과 양자회담을 했다. 그중 이번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국익 차원에서 안정적인 한미중 관계의 정착은 한반도 운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호주,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우리처럼 그 중요성이 절실한 나라는 드물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조율하며 자유무역 정신을 효과적으로 반영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문화 협력과 미래 이익을 강조함으로써 다자질서의 기초인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불과 두 달 전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서 북-중-러 연대를 과시했던 시 주석이 한국과 당장 중요한 합의문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APEC 참가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로벌 양강은 표면적으로 이번 회담을 통해 잠정적 휴전을 선택했다. 미국이 제안한 관세 인하, 그리고 중국이 제안한 희토류 수출 제한 철회 및 철저한 펜타닐 관리가 상호 이해관계의 균형을 맞췄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직접 패널을 들고 ‘관세전쟁’을 선포할 당시만 해도 중국산 수입품에 400%까지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 미국은 여러 나라와 관세 협상을 했지만,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은 생각만큼 위력적이지 않았다. 미중이 경쟁적으로 장벽을 쌓을수록 양국 간 불가피한 상호의존적 경제가 점점 구체화되면서 중국을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칼끝은 복잡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 내내 시 주석이 보여준 표정과 말투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이 시작되는 오른쪽 끝이자 동시에 태평양이 시작되는 왼쪽 끝이다. 이곳에서 대륙의 거인인 중국 정상과 태평양의 거인인 미국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은 마치 두 초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혹은 ‘안미-경미중’과 같은 호사가들의 표현을 떠나, 미국과 중국을 떼어놓고서는 한국 외교를 생각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는 본의 아니게 대미 및 대중 외교에서 ‘거리의 균형’을 추구해 왔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가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논리였다. 하지만 그런 태도를 지속하기에는 한국의 국가이익과 한미중 삼각관계의 중요성이 너무 커졌다. 지금부터는 ‘이익의 균형’에 집중해야 한다. 이익의 균형이란 한국의 국가이익에 최적화된 외교 공식을 설정하고, 주요 정책 사안마다 그러한 공식을 일관되게 적용해 한미 및 한중 관계에서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든 근대국가는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하나는 경제 발전, 다른 하나는 정치 발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자원이라곤 사람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50여 국가를 대표하는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을 이뤄냈다. 한국 GDP의 80% 이상이 교역을 통해 창출된다고 볼 때,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후퇴는 한국의 국가이익에 치명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미중 관계는 한미일 관계보다 더 쉬울 수도 있다. 결국 외교도 내치(內治)의 연장일 수밖에 없으니, 포스트 APEC 시대를 위한 국민적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순간이다.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전 한국국제정치학회장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3 days ago
3
![[기고] AI 제조 혁신의 성패, 내재화·생태계 구축이 가른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닷컴 버블의 교훈[김학균의 투자레슨]](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