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해커 잡지 프랙에 해커들에 대항하는 백모자(white hat) 두 사람이 외국 해커들의 컴퓨터에 침투해서 얻은 자료를 공개했다. 그들이 공개한 자료는 한국 정부의 플랫폼인 ‘온나라’에서 훔친 것들이었다. 정부 문서와 부처 간 사이의 통신을 다루는 체계인지라, 온나라는 한국 사회의 “디지털 척추”라고 그 잡지는 설명했다. 아울러 국군방첩사령부의 이메일 인증서가 많이 도난당했고, 이동통신사도 모두 뚫렸다.
이번에 온나라에 침투한 해커는 북한 조직으로 알려진 ‘김수키(Kimsuky)’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에메랄드 슬리트라고 부르는 조직이다. MS는 날씨에 관련된 말로 위협적 행위자들을 분류한다. 중국 해커는 태풍(Typhoon), 러시아는 폭설(Blizzard), 북한은 진눈깨비(Sleet)다. 한국은 우박(Hail)이고 미국은 선풍(Tornado)이다. 현실적 위협의 강도를 잘 드러낸 표현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컴퓨터가 중국에 있고 중국인들이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중국어로 옮기는 프로그램이 있고 작업 일정이 중국 휴무 관행을 따른다는 것이 그런 추론의 근거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번 해킹을 수행한 세력이 중국 정부와 연관된 조직이며 북한 조직으로 가장했다고 본다. 물론 중국과 북한이 협력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행정의 기본 자료들이 적성 국가로 유출된 것은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어떤 눈길로 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뒷목이 뜨거워진다. 요즈음엔 글을 읽다가 ‘MI5’와 같은 외국 방첩 조직의 이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면역 체계를 잃은 생명체로 전락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현 정권은 중국인 관광객에게 비자까지 면제해줬고, 예상대로 잠적한 중국인들이 나왔다.
당장 급한 것은 중국 해커 조직에 의한 정보 유출에 대응하는 일이다. 적성 국가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많은 정보가 외국으로 유출되면 큰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갖가지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안보를 해치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낮추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그런 위험은 지난 9월 26일 일어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새 차원이 더해졌다. 국가 전산망의 709개 서비스가 마비됐는데, 소실된 자료들 가운데 예비분(backup)이 없는 자료가 적잖다는 얘기가 들린다. 만일 예비분이 없어 영구적으로 소실된 자료가 상당하다면, 우리 정부가 갖추지 못한 기본적 정보들을 중국과 북한은 가진 상황이 된다. 이런 상황이 품은 함의는 전문가들도 제대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음산할 터다.
김수키의 침투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화재 사이에 직접적 연관은 없는 듯하다. 다만 화재 원인에 관해서 정부 발표와 전문가들의 진단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정부는 화재가 리튬 배터리 폭발로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CCTV 영상은 높이 쌓인 배터리들 상부에서 갑자기 거대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안 전문가인 타라 오 박사는 달리 진단했다.
“이것은 리튬 화재가 아니다. 리튬 화재는 연기가 먼저 많이 나고 불이 빠르게 번진다. 불꽃 스파크는 번지지 않는다. 전기적 요인이나 용접으로 인한 화재는 스파크가 많이 난다. 그런데 현장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침착한가?” 마지막 물음의 여운이 길다.
상황이 어려운지라 정부는 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 해킹을 당하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감추고서 혼자 수습하려고 한다. 그러나 해킹은 정보망이 대상이어서 감출 수 없을뿐더러 피해가 급속히 커진다. 해킹을 인지한 순간,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최선이다. 이번에 정부도 해킹당한 사실을 숨겼다. 그 덕분에 해킹이 전 정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두 달 동안 숨겼다는 사실만 부각됐다. 영구적으로 소실된 자료들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리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은 무척 힘들지만 진정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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