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어디에나 있었다. 한적한 골목길로 친구를 불러 ‘돈 좀 빌려줘!’ 하는 녀석 말이다. ‘없다’는 대답엔 ‘뒤져서 나오면 천 원에 한 대’라는 레퍼토리도, 그러다 문제가 되면 ‘빌렸다’는 변명도 어디나 같은 걸 보면 이거 ‘본성’에 가까운 건가?
그런 골목길 살풍경이 국가 간이라고 별수 있을까. 예전에 그런 나라가 하나 있었다. 민주주의 아테네라고. 결국 이웃 스파르타와 영역 싸움 끝에 망했는데 그 과정을 기록한 게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테네가 패권국 스파르타의 입지를 위협하니까 전쟁이 터졌다는 주장, 역사에서 흔히 반복되는 그런 현상을 저자의 이름을 따서 ‘투키디데스의 덫’이라고 하는데 웃긴다.
그게 아테네의 성장을 못 참아준 스파르타 탓이라고? 저자는 그 전쟁에 참전한 아테네인이다. 그것도 장군으로. 그의 부대가 어이없이 패전하면서 조국에서 쫓겨났고 종전 후에 돌아온 인물이다. 그가 공정한 서술을? ‘역사’라 쓰여 있지만 ‘변명’이라고 읽는 게 맞다. 그 아테네는 전쟁 전에 망할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의 진짜 황금기는 페르시아제국과 일대일로 한판 붙을 때였다.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시민들은 앞다퉈 참전했다. ‘지켜야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마라톤 평야의 육상 전투, 이어진 살라미스 해협의 해전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그땐 전쟁에 나갈 때 자기 장비는 자기가 준비하는 게 국룰! 중산층은 갑옷과 방패, 창, 칼을 챙겨 중장보병으로, 상류층은 비싼 말을 준비해서 기병으로 참전했다. 그런 무장을 갖출 돈이 없는 서민들은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으니 그때도 빈부격차가 문제였다. 하지만 해전은 달랐다. 서민들도 해전의 핵심인 함선의 노잡이로 참전이 가능했고 크게 기여했다. 희생을 치른 서민들은 ‘우리도 노고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렇게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깊어졌지만 돈 들어갈 일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살라미스 해전 직후 아테네의 주도로 페르시아 재침에 대비하는 동맹을 결성했다. 당대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은 함선과 병력을 보내든지 아니면 상응하는 돈을 내야 했고 그렇게 모인 자금을 델로스라는 섬에 보관하며 국방비로 사용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자금을 슬그머니 아테네로 옮기는 게 아닌가. 다시 몇 년 뒤엔 페르시아와 평화조약이 체결돼 전쟁 위험이 소멸됐는데도 자금을 계속 요구했다. 낼 수야 있다지만 남이 낸 기금을 아테네 서민의 구휼, 일당 및 아테네 건축물에 제 맘대로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명물 파르테논 신전이 그렇게 지어졌다. 그때도 표를 가진 자국민에게 영합하려고 상식을 폐기하는 정치인이 문제였다. 강압은 동맹국에 대한 내정 간섭, 재판권 침해로 이어졌다. 그래서 돈을 안 내면? 뒤져서 나오면 천원에 한 대, 그동안 낸 돈으로 양성된 아테네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
불만이 폭증하는 와중에 아테네는 관세도 계속 올렸다. 첫 문턱이 어렵지 한 번 넘고 나면 멈추기가 쉽지 않은 법. 번영의 비결인 민주정이라는 동전의 반대편, 다수결에 의한 외부 폭정이 그렇게 커졌다. 결국은 내전, 그리스 전체가 망하는 길로 갔다. 그리고 이미 아테네인에겐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펠레폰네소스 참전용사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이고 그 타락한 민주정이 그를 다수결로 사형에 처했다.
시간이 흐르고 골목길 그 친구들은 사회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묵묵히, 독하게 공부하던 애들이 대체로 성공이란 걸 했다. 투키디데스는 800쪽의 전쟁사를 기록한 이유가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썼다. ‘내가 알아서 좀 쓸 테니 돈 좀 가져와! 없다고 하면 100억달러에 관세 1%’ 이런 게 그런 반복 아닐까. 화딱지 나지만 다시 닥쳐온 어려운 시기, 일희일비하지 말고 강해지기 위해 묵묵히 독하게 할 바를 할 뿐이다. 그 아테네인들, 학교에서 ‘오만이 천벌을 불러온다’고 반복해서 가르쳤단다. 좀 웃긴다. 그래도 노력이 계속되는 한 시간은 결국 우리 편이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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