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새 대통령이 챙겨야 할 국가 아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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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새 대통령이 챙겨야 할 국가 아젠다

다른 공적 직위가 대신할 수 없는 대통령 고유의 과제를 대통령 아젠다라고 부른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대행 시대에서는 상실된 무엇들이었을 것이다.

첫째, 규제 개혁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한국 부패인식지수는 64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기준 21위에 그쳤다. 한국의 부패는 ‘엘리트 카르텔 권력형 부패’라고 분류됐다. 국가의 엘리트가 짬짜미로 권력을 행사해 사익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 수단은 누가 봐도 규제다. 대선 후보 한 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토지용도변경 사례를 보자. 토지용도변경을 통해 토지 가치가 1조원 안팎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규제 가격이 1조원이 넘는 것이다. 이러니 관료나 부처가 규제를 생명줄로 여기고 규제 개혁에는 저항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정부 곳곳에서 국민의 소소한 민원을 집계해 규제 개혁 실적이라고 발표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민원 해소이지 개혁이 아니다.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국정 기조로 삼아 부처와 관료, 정치권의 이익을 회수해서 국민이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 충돌이 있겠지만, 국가 모든 분야에서 규제 개혁이 일어나면 모두에게 궁극적인 시너지와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이 될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 혁신이다. 과학기술 혁신은 수출 지향 경공업 성장 이후 한국의 현대를 가능케 한 근본적인 힘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유일한 제대로 된 투자였다. 인재 양성과 첨단 분야의 우위, 산업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사실상 한국에서 국가 전략과 과학기술 혁신은 동의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국가 연구개발(R&D)은 부처들의 쌈짓돈으로 오용되기 시작됐고, 재미를 들인 부처들은 이런저런 실속 없는 폼 잡기 헛된 투자를 일삼았다. 고통스러운 선택과 집중은 시도하지 않고, 과학기술을 국가 전략에 통합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가 R&D뿐만 아니라 민간의 R&D, 각종 제도와 규제를 통합해 과학기술 혁신이 국가 전략과 조응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관념과 생활 방식 그리고 철학도 과학기술 혁신에 적합하도록 설득하고 공감해야 한다.

셋째, 위기 관리다. SK텔레콤 사태에서 국가 지도자는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SKT 유심 해킹 사태가 아니라 정보 유출 사태인데도 말이다. 국민 절반이 불안에 떨고 혼란과 낭패를 겪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때 주로 집단 수용된 노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자영업자를 경제적으로 좌절시켰다. 대통령은 직접 위기 원인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절대로 한쪽 의견에 쏠리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위기에 취약한 약자를 보호하려는 측은지심을 갖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국가를 통합해야 한다. 우리는 그간의 위기 대응에 언제나 실패했고 제대로 된 반성도 하지 않았다.

넷째, 지정학적 상상력과 창의다. 지정학은 언제나 급변하며 최근에는 더욱 급변하고 있다. 우리의 고슴도치 전략이 어쩌면 타당성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까딱 잘못하면 강대국들의 무기 실험장이나 대리전장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의 역량이 막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우방의 힘에 비해 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좁은 바다로 연결돼 있고 세계 진출로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과 매우 입체적인 교류와 협력 그리고 우정을 쌓아야 한다. 전 분야에서 모두에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우리가 탈바꿈해야 한다. 역사상 보지 못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다. 교과서적 상황 판단, 틀에 박힌 통속적 전술과 구호, 사익에 입각한 맹목적인 ‘친O, 반O’ 등으로 미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의 토론을 보면 이런 위중한 대통령 아젠다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국민의 지성을 더 이상 모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지해서가 아니라 미운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국민의 몸부림이 투표로 투사되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갈라치기 선거 공학의 승리가 당선 후 어떤 결과로 빚어지는지 매번 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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