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운 상승의 기회, 정치가 뒷받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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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국운 상승의 기회, 정치가 뒷받침해야

천년 고도 경주의 가을 잔치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된 제3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역대급 흥행’에 성공하면서 계엄과 탄핵으로 점철됐던 대한민국의 불확실성이 단번에 해소되는 모습이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코스피지수는 3일 사상 처음으로 4200선을 돌파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깐부치킨 도원결의’ 이후 한국 정부와 국내 4대 기업 등에 최대 14조원 규모인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26만 개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자율주행차 부문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생산성의 획기적인 개선이 예상되는 등 ‘한국형 AI 르네상스’의 서막이 올랐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연료 공급을 요청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수용하면서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 핵추진 잠수함 확보 계획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면 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글로벌 해양 강국에 이어 여덟 번째로 핵잠수함 보유국이 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국익·실용에 기반한 대중(對中) 외교를 통해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주의 아름다운 나비가 중국 선전까지 날아와 노래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역내 안보 질서가 진영화의 덫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한·중 관계의 전면적 복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첫 회담은 미래 지향적인 양국 관계 발전과 한·미·일 안보협력 필요성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APEC을 계기로 6년4개월 만에 대좌했다. 양국은 관세를 57%에서 47%로 낮추고, 희토류 수출 제한을 1년간 유예하며 미국산 대두 등 농산물 거래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확전 방지를 위한 ‘스몰딜’에 불과하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 안보 현안은 핵심 의제에서 비켜났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미·중 정상이 무역자유화와 역내 연결성 강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도 양국이 시장 개방과 공급망 복원의 방향성을 확인한 것은 무역 환경을 안정시키는 유의미한 진전이기 때문이다.

경주 APEC을 계기로 글로벌 책임 강국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제고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하고 주변국 정상들이 모두 경주에 집결했고,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 등 굵직한 외교 행사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APEC 본회의는 물론 각종 문화행사와 외빈 접대, 경호작전에 이르기까지 제반 준비 과정과 결과가 세계 10위권 경제력, 세계 5위권 군사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에 걸맞은 품격을 보여줬다. 경주 시민은 차량 2부제와 교통 통제 등 불편을 감수했고, 자원봉사자와 의료진도 조용한 헌신에 동참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약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관련 부처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원팀 정신으로 이뤄낸 실용외교의 값진 성과다.

다시 정치의 시간이다. 국정에 복귀한 이재명 대통령 앞에 10·15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 한·미 동맹과 북한 문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등 국내외 현안이 산적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APEC 정상회담에 대해 ‘국난을 극복한 국민 모두의 성공’으로 평가하며 대미 투자 특별법 제정 등 후속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미 관세 협상 내용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경주 APEC의 성공적 개최는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모인 결과물이다. 이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와 만나 한·미 관세 협상과 APEC 결과를 공유하고 후속 입법과 예산 처리 문제에 협력을 구해야 한다. 국익 앞에서 여야가 따로 없다. 정치권의 품격 있는 협치를 통해 국운 상승의 기회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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