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37〉피지컬 AI, 도시와 공장의 재구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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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우리는 지금 도시 문명사에서 전례 없는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더 이상 스크린 속 데이터가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면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능형 생명체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지컬 AI 시대가 가져오는 가장 근본적인 변화다.

전통적인 스마트시티가 '정보의 도시'였다면, 피지컬 AI 시대의 도시는 '행동하는 도시'다. 기존 스마트시티는 센서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인간 관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AI 도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AI가 직접 도시 인프라를 제어하고 로봇을 통해 시민 서비스를 실행하며 자율 시스템으로 도시를 관리한다. AI가 도시를 '분석'하는 것에서 도시를 '운영'하는 주체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도시의 모든 요소들이 상호 연결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반응하며 AI가 이 전체 시스템의 '중앙신경계'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다. 교통신호, 에너지 배분, 안전 관리, 환경 제어 등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지능 시스템으로 조화롭게 움직인다.

도시에서 피지컬 AI의 작동 원리는 제조업과는 차원이 다른 복잡성을 갖는다. 공장이 통제 가능한 환경이라면, 도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열린 시스템이다. 이러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AI 도시는 세 개의 핵심 레이어로 재구성된다.

첫 번째는 '감각망'이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수만 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교통량, 대기질, 소음, 에너지 사용량, 보행자 흐름까지 도시의 모든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이는 인간의 신경계와 같은 역할이다. 두 번째는 '판단망'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상황을 인지하고 최적의 대응 방안을 결정한다. 인간의 대뇌피질이 담당하던 고차원적 사고와 판단 기능을 AI가 대신 수행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행동망'으로, 바로 피지컬 AI의 핵심이다. AI의 판단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인프라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이는 인간의 운동 신경계와 근육에 해당하는 실행 체계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 변화에는 새로운 차원의 도전 과제들이 따른다. 첫째는 '물리적 안전성'이다. 데이터를 처리하던 AI가 이제 실제 도시 인프라를 제어하고 로봇을 움직이게 되면서, AI의 오작동이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는 '실시간 책임성'이다. AI가 자율적으로 도시를 운영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셋째는 '상호운용성'이다. 서로 다른 벤더의 피지컬 AI 시스템들이 하나의 도시 플랫폼에서 원활하게 협력하려면 표준화된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는 피지컬 AI를 '증강 도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있다. AI가 인간 도시 관리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력과 AI의 실행력을 결합해 도시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딜로이트가 전 세계 250개 도시를 분석한 최근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AI 성숙도가 가장 높은 'AI 리더' 도시들의 핵심 성공 요인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닌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였다. AI가 도시를 자동 운영하되, 시민이 AI의 의사결정을 감시하고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피지컬 AI를 통한 도시 재구성의 성공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집단 지성에 달려 있다. AI가 도시의 뇌가 되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되, 인간이 도시의 의식과 가치관을 담당하는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똑똑한 도시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협력하여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살기 좋은 지혜로운 도시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명 실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 위대한 실험의 성공은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혜와 협력에 달려 있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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