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칼럼] '문과(文科)의 시대'가 다시 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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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칼럼] '문과(文科)의 시대'가 다시 오려면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은 올해 초 “한국은 입만 터는 문과X들이 해 먹는 나라”라고 일갈했다. 직설적인 발언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외상·응급의료 전문가인 이 병원장이 그동안 상대한, 의료 현장에 무지한 ‘인문계’ 출신 관료에게 느꼈을 답답함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발언을 접한 대다수 문과 출신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을 따름이다. 취업도 쉽지 않고, 수입도 변변치 않아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이 거리낌 없이 나도는 게 요즘 한국 사회가 아닌가 싶어서다.

꽤 오랫동안 문과 전공자는 ‘찬밥’ 취급을 받아왔다. 인문·사회 계열 대학 졸업자는 ‘전공 불문’ 취업 시장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다.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도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거론된다. 그런데도 ‘문과가 세상을 이끈다’는 인식이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는 것은 정치와 입법 분야에서 소수의 문과 출신 ‘권력자’가 계속해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제대로 된 ‘문과 리더십’을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들었던 점도 이런 삐딱한 시선에 한몫했을 터다.

잊혀가던 ‘문과 세상’ 발언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에서 자녀 결혼식을 열어 피감기관에서 거액의 축의금을 거뒀다는 비판이 제기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내놓은 도드라진 해명이 그 계기다. 최 위원장은 “문과 출신으로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바빠서 자녀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고 했다.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에 도전할 정도로 최 위원장이 과학 친화적인 인물일지 궁금해졌다. 그가 20여년 전에 쓴 육아서적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를 구입해 읽어봤다. 책에서 최 위원장은 “청소년 범죄의 근본 원인으로 잘못된 먹을거리 문화가 꼽힌다”며 “송아지의 먹을거리(우유)를 먹고 큰 세대의 아이들, 가공식을 먹고 큰 아이들은 성질이 난폭하다”(180쪽)고 주장한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합방한 후 낳은 자식은 머리가 나쁘다”(22쪽)라거나 “여성이 피임을 원하면 2% 매실 농축액으로 충분히 씻은 후에 똑바로 누워서 아랫배를 두드려 준다”(115쪽)는 식의 비과학적 언급도 이어진다. 열이 나면 겨자찜질을 하고 풍욕을 시키는 자연치유 요법으로 병원에 가지 않고 아기 수두를 고쳤다거나 홍역에 걸려도 후유증 없이 깨끗이 낫는다고 설파하는 장면(222~223쪽)은 아찔하기까지 하다.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 나열된 책 곳곳에서 합리적 사고와는 대척점에 선 ‘전근대적’ 시각이 진하게 느껴진다.

위원장뿐 아니라 22대 국회 과방위의 인적 구성도 이상하다. 과방위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나노기술, 뇌 연구, 양자기술, 원자력, 전기통신, 소프트웨어 관련 주요 법안 발의와 심사를 주도하고 과기정통부와 우주항공청을 비롯해 각종 산하기관의 예산을 검토하는 곳이다. 하지만 소속 의원 20명 중 이과 출신은 7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사학(3명), 어문 계열(3명), 사회학, 인류학 등 순수 문과가 초강세다. 문과 출신이라고 과학 입법 활동을 못 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최신 트렌드를 제대로 쫓아갈 수나 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AI 충격으로 세계가 급변하는 시기, 우리에겐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변화를 이끌어가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런 때 과학적 사고를 거부하거나 최신 정보를 이해하기 버거운 이들이 과학·기술 정책을 끌고가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걸림돌’이 되지 않을 ‘진짜 문과’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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