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도난 잇따르는 프랑스
다른 박물관서도 사건 불구… 보안 강화 노력 미미
문화재 예산 축소 지속… 재정 위기로 대책 마련 난항
CCTV, 박물관 일부에만 적용… 감시 인력은 10년간 190명 축소

현장을 지나던 독일인 관광객 알렉스 씨는 “경비 인력이 한 명뿐이라는 게 놀랍다. 독일이었다면 이렇게 큰 사건 뒤에는 경찰을 훨씬 많이 배치했을 것”이라고 했다.
● 경찰 확대 無
이날 기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외벽 2km를 돌아보는 동안 전담 경찰 인력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테러 방지용’이란 문구가 적힌 경찰차 2대가 박물관 한편에 정차해 있었지만 그 안에도 사람은 없었다. 폐쇄회로(CC)TV가 간간이 설치돼 있었지만 주로 지하 부근 사무실을 지키는 용도였다. 건물 외벽과 2층 발코니를 비추는 CCTV 역시 턱없이 부족해 외부 침입을 막기 어려워 보였다.
특히 범인들이 침입하며 깬 유리창은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0일에도 임시 조치만 돼 있다가 최근에서야 정상 유리로 바뀌어 있었다. 한인 유학생 임서연 씨는 “한국이었다면 보여주기식으로라도 가림막을 설치하고 경찰을 대거 배치했을 것이다. 대형 사건 후에도 너무나도 느긋한 프랑스적인 풍경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도난 당시 영상들 또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도난범들이 진열장 유리를 절단하고 범행을 감행하는 동안 상당수 관람객은 제지하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데 집중했다. 7분여의 범행을 마치고 도난범들이 다시 사다리차를 타고 도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루브르 직원들 또한 “경찰을 부르라”고 했을 뿐 적극적인 제지에 나서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유형의 도난 범죄 또한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는 20대 중국인 여성이 총 6kg 상당의 금덩이를 훔쳤다. 놀라운 점은 도난 사실조차 뒤늦게 알려졌다는 점이다.이 여성은 루브르 도난범들처럼 박물관 문 2개를 절단기로 자르고 진열장 유리를 용접기로 파괴한 후 금괴를 가져갔다. 절단기, 용접기, 가스통 등 범행 도구를 현장에 버린 점도 비슷했다. 자연산 금덩이는 일반 금괴보다 가치가 높아 피해 규모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브르 도난 다음 날인 이달 20일에는 18세기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기리는 북동부 랑그르의 ‘디드로의 계몽의 집’에서 역시 도난이 발생했다. 수 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금화와 은화 약 2000개가 사라졌다. 경찰은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 보안 예산 확대 난항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프랑스 재정위기가 문화유산 보안 강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약 5.8%로 유럽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적자 축소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측은 내년에 문화재 관련 예산 4100만 유로(약 680억 원)를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 예산은 이미 2024년에도 약 1억5000만 유로(약 2500억 원) 줄었다.
연이은 예산 삭감에 박물관 노후화를 개선하기 위한 주요 사업 또한 줄줄이 보류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또한 보안 개선 방안 관련 예비 연구를 진행해 2019년경 실현 방안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보호 장비 배치 등 실제 개선 작업이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올해부터 2029년까지 박물관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한 보안 계획도 연기됐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박물관 노조는 “우리의 사명인 유산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결정이 반복됐다. 이는 정부와 박물관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예산 부족으로 감시 인력 또한 점점 줄고 있다. 르몽드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의 감시 인력은 최근 10년 동안 약 190명이 줄었다. 특히 안내소와 보안 요원 90명을 2023년부터 하청업체에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청업체 직원의 시급은 12유로(약 1만9000원)로 16유로(약 2만5000원)를 받는 정직원보다 적다.
이날 박물관 안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동현 씨 또한 “감시 인력 부족이 도난 사건의 원인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근무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 CCTV 확대도 쉽지 않아
로랑스 데 카르 루브르 관장 또한 범행 후 의회에 출석해 CCTV 확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박물관 외벽에 대한 감시가 매우 부족하다”고 시인했다.
예산 부족 외에도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 사회의 전통이 CCTV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날 만난 시민 샤를린 씨는 “CCTV 확대를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고 24시간 감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휴대폰 등을 통해 지금도 충분히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또한 소모적인 공방을 지속하고 있다. 야권은 일제히 “루브르 참사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라며 마크롱 정권을 비판했다. 반면 라시다 다티 문화장관은 “프랑스 사회가 최근 수십 년간 주요 박물관의 보안을 소홀히 해 왔다.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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