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가 흔들리고 있다. 노인은 급격히 늘어나는데 의료인력은 줄고 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를 넘었다. 전남 경북 강원 전북 등 농촌 지역은 대부분 초고령사회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의료인력은 수도권으로만 몰리고 있다. 의사 간호사 약사 의료기사 등 모든 직역에서 지방 기피 현상이 심하다. 단순히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제도가 중앙집권적이라는 점이다. 지역 사정을 고려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필수의료 지원이나 지역의사제 같은 대책이 거론되지만 구조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응급의료정책은 응급실 운영과 응급의학과 전문의 확보에만 초점을 맞췄다. 응급실이 있다고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후 진료가 받쳐주지 못하면, 또 이송체계가 엉망이면 환자는 끝내 사망한다.
이제는 응급실을 넘어 배후 진료 강화, 최종 치료율 제고, 이송정책 개선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응급이 곧 지역의료의 뼈대다. 지역의료 위기를 막으려면 응급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데이터로 문제를 진단하고 권한을 지역에 넘기며 인력을 오래 붙잡아둘 장치가 그것이다.
먼저 지역의료복지데이터센터를 세워야 한다. 지금은 건강보험 청구 자료, 응급 이송 데이터, 감염병 자료, 복지 데이터가 공단 소방청 질병관리청 보건복지부에 흩어져 있다. 시·도가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응급실 이용 건수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환자가 어디서 쓰러졌는지, 어떻게 이송됐고, 최종적으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복지 수급 정보도 치료 지속에 필수다. 배후 진료 확보 여부, 최종 치료율, 이송 거리와 시간 등이 함께 분석돼야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다. 데이터가 지역에 풀려야 맞춤형 응급체계가 설계된다.
또 응급의료 관리 권한을 시·도로 넘겨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이 일괄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지역별 차이를 반영할 수 없다. 시·도 지사가 시·도 의사회와 협력해 응급의료기관과 이송체계를 설계·운영해야 한다. 대도시와 농산어촌을 같은 잣대로 다룰 수는 없다. 권한과 예산이 함께 이양돼야 한다. 그래야 배후 진료 병원을 키우고, 이송망을 정비하며, 최종 치료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 법 개정이 어렵다면 특별자치도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지역보건의료인 연금을 도입해야 한다. 응급의료망은 결국 사람으로 유지된다. 응급실 근무자만이 아니다.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 이송 뒤 치료를 이어가는 배후 진료 의사와 간호사 모두 버텨야 한다. 지금 같은 조건으로는 지방 근무를 유인할 수 없다. 특정 지역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보건의료인에게 국민연금의 2~3배를 20년간 지급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예산이 많이 들겠지만 지역 소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응급실뿐 아니라 배후 진료와 최종 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지역의료 위기는 단순한 의사 부족 문제가 아니다. 응급환자가 최종 치료까지 안전하게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위기다. 따라서 응급의료체계라는 뼈대를 튼튼히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는 응급실만 지키면 된다고 여겼다. 이제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배후 진료가 뒷받침되고 최종 치료율이 오르며 이송체계가 정비돼야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뼈대 없는 몸이 설 수 없듯, 응급이 흔들리면 지역의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응급을 중심에 둔 근본적 전환이다. 이것이 지방 소멸을 늦추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