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보다 못한 잠수함? 승조원 자긍심 해치는 비유[내 생각은/최일]

3 days ago 5
최근 복수의 언론 매체에 ‘교도소보다 못한 잠수함’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잠수함 승조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하며, 승조원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당과 보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잠수함 승조원으로 복무했던 필자 역시 그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잠수함은 태생적으로 좁고 답답하며, 햇빛조차 볼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는 교도소와 같은 징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다. 전시에 적의 탐지를 피하고 수중에서 장기간 생존하기 위한 과학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잠수함 내 공간이 좁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탐지되지 않고 생존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교도소보다 못하다’는 평가는 잠수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열악함만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이다.

승조원 이탈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잠수함 승조원의 처우 문제는 반복적으로 거론된 반면, 수당 일부 인상 외에는 근본적으로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인력 이탈 이유는 단순히 낮은 수준의 처우 때문만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잠수함 승조원이 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그에 따른 자부심의 상실에 있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그저 근로자가 아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지키는 전문 인력이다. 그런데 이들의 근무환경에 대해 ‘열악하다’는 프레임이 퍼지면, 사회적으로 잠수함 승조원은 ‘불가피한 희생의 직종’으로 낙인찍힌다. 게다가 군 내부에는 ‘그 부대만 힘들다’는 소외감이, 사회적으로는 ‘보상받아야 할 직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겨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지원자는 줄고, 숙련자는 이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 사회도 무심한 동정의 언어 대신 ‘국가 전략의 핵심을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잠수함 승조원을 재정의하는 건 어떨까. 대한민국 잠수함 부대의 발전은 동정이 아니라 자긍심과 존경의 문화 위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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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일 대한민국잠수함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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