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을 상상하게 하는 이만한 공간이 서울에 또 있을까.
다만 월대 위에 올라서면 ‘시간여행’의 환상은 아슬아슬해진다. 청계천 남쪽 ‘세운3구역’을 재개발해 세운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1·2단지’(지상 27층)와 을지로 남쪽 ‘세운6구역’에 들어선 을지트윈타워(높이 약 90m)가 우듬지 위로 머리를 내미는 탓이다. 그래도 아직은 참아줄 수 있다. 현대 서울의 건축물이란, 스리슬쩍 종묘를 엿보며 질투하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종로와 청계천 사이, 이들 건물보다 종묘에 220m 이상 가까운 ‘세운4 재개발구역’이다. 코앞에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는 이에 짓눌린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한 건축문화유산 전문가는 “그럴 경우 종묘의 경관은 고층건물에 압도당할 것”이라고 단언했다.서울시가 최근 ‘세운4구역’ 재개발지구의 높이 규제를 완화한 것이 걱정되는 건 이 때문이다. 시는 지난달 30일 새 정비계획을 고시하고 종묘 쪽은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건축물의 고도 상한을 높였다.
경복궁 안에서도 고층 빌딩은 보인다. 하지만 종교적 장엄함이 중시돼야 하는 종묘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일각에선 일본이 도쿄역 주변의 높이 제한을 완화해 업무지구로 탈바꿈시킨 것을 예로 드는데, 근대 건축물인 역사(驛舍)와 종묘는 비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정말 ‘종묘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면’ 충분한 것일까.
오늘날의 번영은 중요하지만 서울시의 행보는 언뜻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높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사업성’이 낮아 걸림돌이 된다는데, 규제 완화 전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마련된 정비계획상 용적률이 660%다. 원래 단층∼저층 건물이 차지했던 도심 땅을 이 정도 용적률로 재개발하는데 사업성이 안 나온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더구나 세운지구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구조여서 종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역도 종로에 붙은 2구역과 4구역뿐이다. 녹지 확보를 위해 고층 개발하자는 건 이해가 가지만 굳이 종묘 코앞까지 그래야 할까.대법원이 6일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은 개정 권한을 따졌을 뿐 중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련해 가치 판단을 한 것은 아니다. 1995년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는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을 명시한 바 있다. 현대적 건물이 종묘를 발밑으로 내려다보는 구도가 우리가 정신문화를 대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박제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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