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팔란티어 만든 철학자의 시각… 인문학이 ‘AI 강국’ 여는 힘

5 days ago 4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동아일보가 지난달 인터뷰한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 앨릭스 카프의 이력은 독특하다. 독일 괴테대에서 공격성과 언어, 사회규범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팔란티어를 엔비디아, 테슬라와 나란히 하는 빅테크로 성장시킨 모델 ‘온톨로지’는 그의 학문적 기반에서 왔다. 철학의 ‘존재론(ontology)’에서 출발한 온톨로지는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AI를 활용해 여러 데이터 간 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연결한다. 부서별로 파편화된 데이터를 관계 기반으로 재정의해 기업이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창업한 스튜어트 버터필드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논증 그 자체, 언어의 사용, 주장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철학 훈련은 비즈니스에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깊이 생각해야 답에 도달하는 철학적 사고의 과정이 스타트업의 제품 개발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AI가 일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AI 활용을 두고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소버린(주권) AI와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미 선두 주자들은 기술 그 자체만큼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AI로 인류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질문에 답을 줄, 나아가 기술 발전에 창의성을 더할 대한민국 ‘문사철’은 구조조정 중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 시내 대학에서 통폐합된 문학 역사 철학 전공학과는 300여 개. 2011년에도 국내 80개에 불과했던 철학과는 올해 55개로 줄었다. 덕성여대는 올해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신입생을 뽑지 않았고, 다른 대학들도 어문 계열 학과들을 묶어 지역 문화권 학과로 재편하는 추세다.

입학하자마자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이과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대학 재학생 중 인문계열 전공생 비율이 14.1%에서 2025년 11.3%로 줄어든 반면에 공학계열 전공생 비중은 24.3%에서 27.6%로 늘었다. 인문학을 발전시킬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구글 등 빅테크를 거쳐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 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는 스콧 하틀리는 많은 스타트업을 지켜본 결과 “시대를 초월하는 인문학적 질문과 인간 욕망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기술 개발에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팔란티어가 데이터를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AI와 결합한 것처럼 ‘공학 대 인문학’, ‘문과 대 이과’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엔비디아가 고성능 GPU 26만 장을 한국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정부는 소버린 AI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GPU 확보는 시작일 뿐이다. 기술과 인간을 잇는 철학적 통찰을 지닌 인재를 길러낼 때 그 목표를 이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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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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