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보행로 폐쇄 논란은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19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재건축 아파트는 공공보행로에 1.5m 높이 담장을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단지 역시 재건축 당시 보행로 설치를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 약속을 어긴 셈이지만 처벌은 벌금 100만 원에 그쳤다. 그나마도 보행로 폐쇄 자체가 아니라 구청 허가 없이 시설물을 설치한 데 대한 벌금이었다. 지난해에는 담장 설치를 막는 구청을 상대로 아파트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주민들이 승소하기도 했다. 보행로 개방은 사업 시행자인 조합이 약속한 것일 뿐, 준공된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이 그 의무를 승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압구정이나 여의도 재건축은 대부분 한강을 끼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압구정3구역 재건축의 경우 계획 단계에서 이미 한강으로 통하는 공공보행로를 지상에 조성하느냐를 놓고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미 판례까지 나와 있으니 이들 단지도 입주 전에는 사업 진행을 위해 공공보행로를 설치하더라도, 입주 뒤에는 담장을 쳐 통행을 막을 공산이 크다. 공공보행로가 막히면 일반 시민들에게 이런 재건축 아파트들은 한강을 둘러싼 성벽이 될 것이다.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입주민들은 ‘사유지인데 공공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건축 단지의 가치가 정말 100% 그 아파트 주민만의 것일까? 부동산 가격에는 입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변에 지하철역이 있는지, 학교는 가까운지, 도로는 뚫려 있는지 등이다. 세금으로 공공이 짓고 관리하는 기반시설이 땅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재건축 역시 입지를 갖추고 기반시설이 있는 곳이어야 진행될 수 있다.공공보행로 폐쇄는 함께 누려야 할 이런 가치를 특정 단지 주민들이 독점적으로 누리겠다는 얘기다. 입주민들은 안전과 치안 불안, 보행로 관리 비용 부담 등을 폐쇄의 이유로 들지만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입주민, 인근 주민들과 논의해 얼마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또 보행로의 법적 권리관계 등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면 설치한 뒤 폐쇄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꼼수’를 막을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모든 일상생활을 해결하는 닫힌 커뮤니티로 변화해 왔다. 담장을 높여 외부인을 배제하는 이런 주거 형태가 한국 특유의 아파트 쏠림 현상, 지역·단지 간 ‘급’ 나누기, 나아가 급격한 아파트값 상승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하루빨리 공공보행로 논란의 해법을 찾아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다시 또 담장을 친 닫힌 커뮤니티로 회귀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3 days ago
5
![[기고] AI 제조 혁신의 성패, 내재화·생태계 구축이 가른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닷컴 버블의 교훈[김학균의 투자레슨]](https://www.edaily.co.kr/profile_edaily_512.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