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반복되는 공공보행로 개방 논란… ‘사유지’가 폐쇄 이유 될 수 없다

3 days ago 5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최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가 단지를 관통해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공공보행로를 막고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사유지에 외부인 출입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출입을 막겠다는 입주민과, 보행로 설치를 조건으로 재건축 허가를 받았는데 다른 이들의 불편을 외면하는 이기주의라는 인근 주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공공보행로 폐쇄 논란은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19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재건축 아파트는 공공보행로에 1.5m 높이 담장을 설치해 외부인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단지 역시 재건축 당시 보행로 설치를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 약속을 어긴 셈이지만 처벌은 벌금 100만 원에 그쳤다. 그나마도 보행로 폐쇄 자체가 아니라 구청 허가 없이 시설물을 설치한 데 대한 벌금이었다. 지난해에는 담장 설치를 막는 구청을 상대로 아파트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주민들이 승소하기도 했다. 보행로 개방은 사업 시행자인 조합이 약속한 것일 뿐, 준공된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이 그 의무를 승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압구정이나 여의도 재건축은 대부분 한강을 끼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압구정3구역 재건축의 경우 계획 단계에서 이미 한강으로 통하는 공공보행로를 지상에 조성하느냐를 놓고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이미 판례까지 나와 있으니 이들 단지도 입주 전에는 사업 진행을 위해 공공보행로를 설치하더라도, 입주 뒤에는 담장을 쳐 통행을 막을 공산이 크다. 공공보행로가 막히면 일반 시민들에게 이런 재건축 아파트들은 한강을 둘러싼 성벽이 될 것이다.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입주민들은 ‘사유지인데 공공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건축 단지의 가치가 정말 100% 그 아파트 주민만의 것일까? 부동산 가격에는 입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변에 지하철역이 있는지, 학교는 가까운지, 도로는 뚫려 있는지 등이다. 세금으로 공공이 짓고 관리하는 기반시설이 땅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재건축 역시 입지를 갖추고 기반시설이 있는 곳이어야 진행될 수 있다.

공공보행로 폐쇄는 함께 누려야 할 이런 가치를 특정 단지 주민들이 독점적으로 누리겠다는 얘기다. 입주민들은 안전과 치안 불안, 보행로 관리 비용 부담 등을 폐쇄의 이유로 들지만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입주민, 인근 주민들과 논의해 얼마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문제다. 또 보행로의 법적 권리관계 등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면 설치한 뒤 폐쇄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꼼수’를 막을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모든 일상생활을 해결하는 닫힌 커뮤니티로 변화해 왔다. 담장을 높여 외부인을 배제하는 이런 주거 형태가 한국 특유의 아파트 쏠림 현상, 지역·단지 간 ‘급’ 나누기, 나아가 급격한 아파트값 상승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하루빨리 공공보행로 논란의 해법을 찾아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다시 또 담장을 친 닫힌 커뮤니티로 회귀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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