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탈원전은 탈AI다

1 week ago 8

[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탈원전은 탈AI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오는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경주를 방문한다. 그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황제’이자 세계 각국 정부를 상대하는 글로벌 ‘AI 세일즈맨’이다.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AI 시대를 뒷받침할 전력 수급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황 CEO의 우려는 지난 5월 대만에서 개최된 ‘AI 트렌드 인사이트 서밋’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AI산업의 가장 큰 과제는 에너지”라며 “대만은 반드시 원자력 발전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면전에 대고 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친원전 민심 거스르는 대만 총통

대만은 지난 5월 17일로 40년 운영 허가가 만료된 마안산 원전 2호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 문제는 대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다.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웃도는 부를 창출하고 있는 TSMC가 탈원전 때문에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다. TSMC는 올해 2분기 기준 대만 전체 전력의 12.5%를 사용했다. 대만 내 TSMC 팹 증설 계획을 감안하면 2030년께 TSMC가 사용할 전력은 대만 전체의 2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탈원전은 탈AI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대만을 ‘AI 아일랜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TSMC의 전력원을 뒷받침할 원전 가동을 중단시키면서 민심이 요동쳤다. 급기야 8월 23일 대만에서는 원전 3호기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시행됐다. 총 590만6370명이 참여해 29.5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효 투표 585만3125표 중 찬성 434만1432표(74.17%), 반대 151만1693표(25.83%)의 결과가 나왔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민진당 텃밭인 대만 중남부조차 60% 이상이, 3호 원전이 있는 남부 핑둥에서도 58%가 찬성에 표를 던졌다. TSMC 블랙아웃, AI 전력 수요 급증, 중국의 해안 봉쇄에 따른 에너지 위기 등의 우려가 민심으로 나타난 셈이다.

다만 찬성표가 총유권자의 25%(500만523표)를 넘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재가동 안건은 부결됐다. 라이 총통은 “민의를 존중한다”면서도 여전히 원전 재개에 미온적이다.

원전 초강대국 중국, 180기 가동

대만의 탈원전 논란은 이재명 정부의 모호한 에너지 정책을 연상시킨다. 지난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계속운전 여부에 대해 두 차례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고리 2호기 심의는 이재명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가늠할 잣대로 해석된다. 원안위는 지난달 회의에서도 결정을 미뤘다. 원안위 결정이 늦어지면서 운전 중지 기간도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고리 3호기는 지난해 9월 28일, 고리 4호기는 올 8월 6일 운전허가 기간 만료에 따라 정지됐다. 한빛 1호기도 오는 12월 운전 정지가 불가피하다. 한국원자력학회는 “고리 2호기 심사에서 제기된 쟁점들이 다른 원전에서도 반복될 경우 원전 1기당 2~3년 소요되는 심사가 중복되면서 국가 전력 수급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AI산업이 내년부터 극심한 전력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의 전력 생산이 로켓처럼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현재 58기인 원전을 2035년까지 최대 180기로 폭발적으로 늘려 ‘글로벌 AI G1’에 오른다는 구상이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 원전에 목을 매는 이때 황 CEO를 비롯해 테크 거물들이 APEC CEO 서밋에서 ‘차세대 원자력 역할’을 주제로 머리를 맞댄다. 공교롭게도 APEC이 열리는 경주 일대는 원전 10기 이상이 밀집한 ‘K원전’의 최전선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