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두뇌로 움직이는 신무기…美·中은 '방산 OS'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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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드AI가 지난달 21일 공개한 수직이착륙 전투기 ‘X-BAT’.   실드AI 제공

실드AI가 지난달 21일 공개한 수직이착륙 전투기 ‘X-BAT’. 실드AI 제공

미국 서부 최대 해군기지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코로나도만. 퇴역한 항공모함 USS 미드웨이호(CV-41)가 관광객을 맞고 있는 이곳에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하는 기업 실드AI의 본사가 있다. ‘우리의 기술로 우리 장병을 지킨다’는 모토를 내세운 실드AI의 목표는 방산 운영체제(OS) 구축이다. 전투기, 드론, 함정, 전차 등 전장의 모든 무기를 하나로 묶어 지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체계를 개발 중이다.

중국이 지난 9월 톈안먼 승전기념 열병식에서 선보인 스텔스 무인전투기 GJ-11(리젠)은 중국이 구상 중인 인공지능(AI) 기반 타격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J-20 스텔스 전투기 등과 연동한 유·무인 복합체계로 미국에 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지상 과제다. 최근에는 중국 AI 선두 주자 딥시크와 국유 방산업체의 결합이 눈에 띄게 늘었다. 차석원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국방 연구개발(R&D)의 핵심인 베이징항공항천대가 딥시크 본사가 있는 항저우에 최근 캠퍼스를 연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래전은 누가 더 무기를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AI 무기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방산 OS는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핵우산만큼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자율무기 두뇌' 노리는 美 실드AI…"우크라 전장서 실전 능력 증명"
美 실드AI, AI 자율무기 OS

지난 7월 국내 언론 최초로 방문한 실드AI 본사. 성조기가 걸려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 복도 벽면에 새겨진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 장병들을 자랑스럽게 만들자’. 여느 스타트업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로비에는 수직 이착륙기 ‘V-BAT’ 기체가 전시돼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30회 이상 출격 경험을 쌓은 실드AI의 대표 무인기다.

사무실로 이동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은 직원들이 모니터에 빼곡히 적힌 코드를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일부는 칸막이 없는 공간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톰 샤퍼 실드AI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실드AI는 가벼운 조직을 꾸려 빠르게 기술을 채택하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방위산업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후드티 입고 코딩하는 방산기업


수십 년간 미국 방산 생태계의 최정점에는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 보잉 등 대형 기업이 군림했다. B-2 스텔스 폭격기, F-35 전투기 등 이름만으로도 적들에게 공포를 주는 무기가 이들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러-우 전쟁은 막강한 화력을 갖춘 전함·전차 등 대형 무기가 정교한 드론 공격에 속절없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전쟁의 축이 작고 빠른 드론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를 가능케 하는 인공지능(AI)과 자율무기체계 기술이 각국의 최우선 개발 과제로 떠올랐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최적화된 실리콘밸리식 방산 스타트업이 국방 혁신의 전면에 등장한 이유다.

쇼생크 고엘
제품 담당 부사장

쇼생크 고엘 제품 담당 부사장

자율무기체계가 중요해진 것은 현대전이 ‘초고속’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자율무기가 공격 목표를 탐색하고 결정하는 속도는 인간 조종사를 빠르게 넘어서고 있다. 대표적인 미래 무기체계로 꼽히며 ‘벌떼 드론’으로 불리는 군집 드론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자율적 판단에 따라 초 단위로 결정을 내리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샤퍼 부사장은 “현대전은 자율무기와 또 다른 자율무기가 협력하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드AI는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먼과 함께 전투기 자율비행 기술을 공동 개발 중이다. 7월에는 RTX(옛 레이시온테크놀로지)의 무기에 하이브마인드 운영체제(OS)를 적용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미국 최대 군함 조선사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스와는 무인 잠수정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쇼생크 고엘 실드AI 제품 담당 부사장은 “자동차산업이 5년 전에 경험한 소프트웨어 전환이 현재 방산업계에서 한창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톰 샤퍼 
엔지니어링 부사장

톰 샤퍼 엔지니어링 부사장

지난해 8월 록히드마틴에서 실드AI로 이직한 샤퍼 부사장은 최근 미국 방산업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25년간 세계 최대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에서 근무했다. 록히드마틴 수석소프트웨어엔지니어와 기술 고문을 지낸 그는 상장도 하지 않은 스타트업 실드AI로 이직한 이유에 대해 “록히드마틴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록히드마틴이 전투기, 헬기, 미사일을 아우르는 방산업계의 백화점이라면 실드AI는 자율무기 개발에 집중하는 전문점이다. 직원 1000여 명 중 300명이 소프트웨어엔지니어다. 그중 약 240명이 하이버마인드를 중점 연구하고 있다.

“자율무기 몇 달 내 비행 테스트”
그렇다고 실드AI가 기존 방산업계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샤퍼 부사장은 “실드AI는 자율무기 개발에 특화돼 있어 기존 방산 기업의 역량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OS 시장을 석권한 구글 안드로이드가 실드AI의 롤모델이다. 고엘 부사장은 “고객들은 하이브마인드나 자율무기체계에 관한 지식 없이도 몇 달 내에 비행 테스트를 할 수 있다”며 “42㎞ 길이 마라톤을 하는데 33㎞부터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자신했다.

실드AI는 미국에서 실전 무기 운용 경험을 쌓고 있는 몇 안 되는 디펜스테크 기업이다. 실드AI 하이브마인드를 적용한 V-BAT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정보수집·감시·정찰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실드AI가 실전에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통신이 차단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와 위성항법장치(GPS) 등이 끊길 경우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드AI가 찾은 방법은 라디오 통신과 카메라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멈춰도 눈과 귀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실드AI는 육해공 전 영역에서 자율무기체계가 협동 작전을 펼치는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고엘 부사장은 “현재 공중 분야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를 육·해상 무기와 조화시킬 수 있는 ‘협업형 이종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딥시크 탑재한 '中스텔스 드론'…"AI파일럿-유인기 협공 가능"
中 훙두항공공업, 스텔스 드론 GJ-1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개최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인민해방군 1만2000명은 눈을 부릅뜬 채 관절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쳐드는 행진인 정부(正步)를 선보였다. 서방에서 ‘거위걸음’이라고 비꼬는 이 행진법은 중국, 북한, 옛 소련이 군대의 위용을 드러내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수단이자 서방 최첨단 전력에 대항하는 인해전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정부를 보던 서방 군사 관계자들은 중국이 최첨단 무기 500여 대를 차례로 등장시키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의 전력이 단순히 인해전술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강 인공지능(AI) 경쟁력을 과시해서다.

AI 두뇌로 움직이는 신무기…美·中은 '방산 OS' 전쟁 중

열병식의 진짜 주인공 ‘GJ-11’
중국은 열병식을 통해 ‘핵 3축’의 완성을 과시했다. 사거리가 1만3000㎞ 이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DF)-61, 사거리 1만1000㎞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JL-3, 전략폭격기 JL-1 등 육해공 전 영역에서 핵 억지력을 구축했음을 공표했다. 이날 군사 전문가들이 주목한 건 전장에서 타격을 주는 AI 기반 스텔스 무인 전투기(UCAV) GJ(攻擊·궁지)-11의 등장이었다.

한자 그대로 ‘공격하다’라는 뜻을 가진 GJ-11은 리젠(利劍·날카로운 검)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GJ-11이 개발된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양항공공업이 스텔스 드론 프로젝트에 들어가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현재 제조사는 훙두항공공업이다. 두 회사 모두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항공공업그룹의 자회사다.

프로토타입은 2013년 말 첫 비행에 성공했다.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개념 형태로 공개됐다. 꼬리가 없는 가오리 형태의 스텔스 설계가 특징인 GJ-11은 길이 10m, 날개폭 14m의 무인전투기로 최대 이륙중량은 10t이다. GJ-11은 아음속(마하 1 미만 속도) 비행 기준으로 6시간 동안 1500㎞ 반경에서 순항미사일, 대레이더미사일, 정밀유도폭탄 등 최대 2t을 무장한 채 AI 기반 작전이 가능하다. GJ-11이 중국 연안에서 출격하면 한반도와 일본 규슈,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잇는 제1도련선 전역을 작전반경으로 두게 된다.

이 기체를 항모에 탑재하면 작전반경은 제1도련선 범위를 훌쩍 넘어 미국도 사정권에 둘 수 있다. 중국 관영 매체 CCTV는 중국군이 GJ-11 및 J-20 스텔스 전투기가 함께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윙맨(wingman)’ 연구를 시작했다며 AI를 활용해 J-20 전투기와 GJ-11이 함께 비행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CCTV는 J-20 조종사 2명 중 뒷자리에 앉은 조종사가 GJ-11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도했다.

알고리즘 주권 확보
전문가들은 GJ-11에 딥시크가 적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보안기업 인식트그룹은 지난 6월 ‘AI의 눈: 중국 군사 정보 분야의 생성형 AI 활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중국군 조달 기록을 보면 딥시크가 150차례 이상 언급됐다”며 “2월 딥시크가 등장한 후 3~5월 기록이 집중됐다”고 밝혔다. 시안공대 연구진은 5월 공개한 연구에서 딥시크 기반 시스템이 4만8000초(약 13시간) 걸리던 전장 시뮬레이션 분석을 48초 만에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딥시크 베이징지사 인근에 있는 베이징항공우주대는 저고도·저속·소형(LSS) 위협 대응용 드론 군집 의사결정 시스템에 딥시크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중국군 드론이 인간 개입을 최소화한 채 딥시크로 표적을 인식·추적하는 대형 편대의 작전을 구현하려고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딥시크 전략이 ‘밀리터리 알고리즘 주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AI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여기겠다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의지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샌디에이고=김인엽 특파원/강경주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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