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손끝에서 만드는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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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손끝에서 만드는 민주주의

‘010-9103-8388.’

이 번호는 12년 전 첫 구청장 선거 때부터 지금까지 내 휴대폰 번호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주민들의 문의와 민원이 계속 들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정성껏 답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문자 대화는 점점 늘어나 2018년 재선 때는 하루 수십 건이 오갔다. 그때 깨달았다. ‘이 번호는 단순한 연락처가 아니라 진짜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이 번호를 그대로 공식 민원 창구로 삼았다.

처음엔 모든 문자를 직접 읽고 답장을 보냈다. 코로나19 시기 하루 수백 건의 문자가 쏟아져 직원들과 역할을 나눴지만 여전히 문자를 꼼꼼히 읽고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내 몫이다. 문자 민원은 지금도 내 하루의 시작이자 마무리다. 주민들과 하루를 함께 산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문자를 읽는다.

문자 한 통은 단순히 불편의 전달이 아니다. 어느 여름 “성수동에 이상한 날벌레가 가득해요”라는 문자가 여러 건 들어왔다. 확인해보니 한강 인근의 ‘팅커벨’, 즉 동양하루살이였다. 나는 주민들에게 이 곤충이 2급수 이상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는 환경지표종이며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점, 물 스프레이로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활 팁을 안내했다. 불안해하던 주민들이 ‘덕분에 안심됐다’는 문자를 보내왔을 때, 나는 다시 느꼈다. 문자 한 통이 행정과 시민을 잇는 신뢰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런 소통은 새로운 정책으로 이어졌다. 한 주민이 “주차장에 전화번호를 남기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고 보낸 문자에서 주차안심번호서비스가 탄생했다. 가상번호를 활용해 연락은 가능하지만 개인정보는 보호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숲 입구의 ‘스마트 흡연부스’ 역시 문자 민원에서 비롯됐다. 341건의 민원이 집중된 곳에 밀폐형 음압구조의 친환경 흡연 공간을 마련했다. 이 덕분에 비흡연자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당시에는 “기다리다가 코로나 걸리겠다”는 주민의 문자를 계기로, 전국 최초로 ‘선별검사소 대기인원 실시간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 보건소 현장의 불편을 담은 한 통의 문자가 전국으로 확산한 정책이 된 것이다.

나는 문자 한 통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 속에는 불편을 견디다가 전한 용기, 누군가를 대신한 걱정, 그리고 우리 동네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방식은 불편을 줄이기 위한 수단을 넘어 신뢰를 쌓고 효율을 높이며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길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손들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 데서 시작된다. 문자 한 통이 모여 행정의 방향이 되고, 정책의 씨앗이 되며, 지역의 기준이 된다. 지금도 나는 휴대폰을 켜고 주민의 문장을 읽는다. 그 손끝과 눈길에서 성동의 민주주의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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