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후반 글로벌 고용 컨설팅 기업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가 ‘10월 감원 발표 보고서’를 공개해 글로벌 증시에 충격을 줬다. 지난달 미국 기업 감원이 전달보다 183% 급증하고 10월 기준으로는 2003년 후 최대인 15만3074명에 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올해 1~10월 누적 감원 수는 109만9500명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가장 많았다. 고용 쇼크까지 겹치며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뉴욕 및 한국 증시가 급락했다. 보고서 원문을 읽어보면 감원의 절대 규모 못지않게 충격적인 대목이 또 있다. 미국 기업이 지난달 감원 사유로 1위 ‘비용 절감’(5만400명)에 이어 ‘인공지능’(AI·3만1000명)을 2위로 꼽은 것이다. AI는 이 회사 보고서에서 2023년 5월(3900명) 감원 사유 항목으로 처음 등장한 데 이어 지난 7월(1만 명)엔 5위권으로 진입하더너 급기야 지난달 2위가 됐다. 경기 악화, 구조조정, 인수합병(M&A), 폐업 등 ‘전통적 사유’를 따돌리고 AI가 핵심 감원 사유가 된 것이다.
AI가 확산 초기 단계부터 미국 고용시장 지형을 바꾸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테크 분야를 넘어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 고객 응대 분야 화이트칼라에까지 AI 기반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AI의 노동 대체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로운 해고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의 강한 고용 유연성은 이런 AI 혁신을 한층 가속화하고 있음을 이번 CG&C 보고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노동시장의 구조적 악화로 이어질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영, 엔지니어, 전문직 등 ‘비반복적 인지 노동 직군’을 중심으로 앞으로 상당 기간 고용이 둔화될 것이란 전망(JP모간)도 있지만 골드만삭스는 반대로 본다. 생성형 AI가 6~7% 일자리를 대체해 과거 정보기술(IT) 자동화 시대처럼 실업률이 일시적으로 0.3~0.5%포인트 높아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총수요 확대에 따른 신규 산업·일자리 창출, 노동 수요 재조정 등으로 상쇄돼 고용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내다본다. AI가 만들어낼 신규 일자리 창출 속도가 기존 일자리 감소를 얼마나 빨리 따라잡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도 고령화와 노동 공급 감소로 인한 잠재성장률 둔화를 반전시킬 핵심 동력으로 AI를 설정하고 산업 현장에 본격 적용하고 있다. 미국처럼 AI발 고용 충격이 불가피하지만 한국은 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지나치게 낮은 고용 유연성 때문이다. 해고가 어렵다보니 AI 혁신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혁신이 이뤄져도 기존 인력을 감축하지 못하니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여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내놓은 ‘AI 확산과 청년 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 AI가 나온 2022년 11월 이후 AI 고(高)노출 업종에서 청년 고용은 20만8000개 줄었지만 조직 관리 등 역할을 하는 50대 이상 고용은 14만6000개 늘었다.
문진영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최근 한국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사회 안전망 확보를 전제로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기술 발전에 맞춰 고용시장도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옳은 해법이다. AI 혁신을 위해선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동시에 실업급여와 근로자 교육 및 재훈련 프로그램 등을 대폭 강화해 이른바 유연 안정성(플렉시큐리티)을 높이는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하는 정년 연장 입법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현재 만 60세인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로 늘리는 방향으로 연내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고 노동계도 이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 현행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놔두고 서둘러 정년만 연장하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와 청년 실업난을 키우고 노동 경직성을 확대해 AI 전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정년 연장, 퇴직 후 재고용, 정년 폐지 등 고용 방식을 다양화하고 직무 성과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손봐 유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현재보다 훨씬 쉽게 하는 것도 필수다. 속도보다는 노동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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