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종묘와 세운지구, 정쟁 소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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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종묘와 세운지구, 정쟁 소재 아니다

만사(萬事)가 정쟁(政爭) 소재가 되는 시대라지만 그래선 안 되는 일도 적지 않다. 감성적, 선동적 언어가 사태의 본질을 가릴 때 합리적 토론과 대화는 사라진다. 여기에 정당·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겹쳐 극단 주장이 득세하면 일은 꼬여버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고층 개발을 놓고 벌어지는 정부와 서울시 간 갈등도 이런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6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바깥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고 판결했을 때만 해도 세계유산 보호와 도심 낙후지역 개발을 둘러싼 그간의 논란도 정리될 것 같았다. 앞서 서울시는 세운4구역 일대 건물의 최고 높이를 종로변 101m, 청계천변 145m(기존 55m, 71.9m)로 변경 고시했는데, 대법원 결정은 서울시 손을 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金총리·吳시장 정면 충돌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던 정부 대응은 하루 만에 달라졌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종묘 정전(正殿)을 찾아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개발에 대해서는 ‘해괴망측한 일’ ‘1960∼19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등 격한 말까지 동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달 10일 종묘를 방문해 “문화와 경제, 미래를 모두 망칠 수 있는 결정을 지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운4구역 개발과 관련 없는 사안까지 끌어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격한 것이다. 정부 쪽 얘기만 들으면 서울시가 문화유산 보호는 뒷전이고 문화와 경제, 미래를 망치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목 말고 대화로 풀어야

김 총리 발언 중엔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바로 숨이 턱 하고 막히게 되겠다. 와서 보니 놔두면 기가 막힌 경관이 돼버리는 것”이란 대목도 있다. 정말 그럴까. 이런 걱정은 세운4구역 개발 후 모습을 그려보면 대부분 해소될 것 같다.

우선 세계유산에 등재된 핵심 건축물인 정전과 세운4구역 간 거리는 직선으로 500m가 넘는다. 이 정도 떨어진 곳에 71~145m 높이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서 종묘의 가치가 얼마나 훼손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세운4구역은 정남향인 정전을 등지고 보면 좌측 44도에 자리한다. 사람이 형태를 자각하는 30도를 벗어난다.

철거가 완료돼 공터로 남아 있는 세운4구역과 달리 좌측 2구역엔 50년 이상 된 노후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서울 한복판의 낙후지역을 마냥 방치할 게 아니라면 규제 완화를 통한 개발은 불가피하다. 개발이익으로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를 연결하는 폭 100m의 녹지축을 조성한다는 서울시 계획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김 총리와 오 시장은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이다. 속한 정당이 다르다고 반목하기보다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일 잘하기’로 평가받는 쪽의 꿈이 먼저 현실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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