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권력구조 개편보다 중요한 '경제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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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권력구조 개편보다 중요한 '경제 개헌'

개헌이 다시 정치권 이슈로 떠오를 조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헌절인 지난 17일 개헌 필요성을 다시 언급하면서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권력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정치적 사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현행 헌법의 경제 관련 조항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는 ‘경제 개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시장경제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한 제119조 1항이 그것이다. 하지만 헌법을 이모저모 살펴보면 시장경제와 다소 상충하는 요소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토요칼럼] 권력구조 개편보다 중요한 '경제 개헌'

대표적인 것이 경제에 관해 다룬 제9장이다.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지역 경제를 육성”하고,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고,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주어는 국가로 같고 서술어도 보호한다, 육성한다, 의무를 진다 등으로 비슷한 조항이 목적어만 바뀌어 반복된다.

근로자 권리와 복지 등을 다룬 사회권 조항 역시 시장경제 원칙과는 부딪칠 소지가 있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제34조 2항과 여성, 노인, 청소년 등의 권리를 규정한 제32조가 그렇다. 국민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할 수 있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 없이 그런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는 어렵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도 헌법의 지배적 이념인 자유시장경제를 수시로 위협한다.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격차가 발생하기 마련인 경제 문제에 ‘1인 1표’의 정치적 셈법을 적용하자는 것은 대중 정치인들에게 너무나 달콤한 표밭의 유혹이고, 실제 정치적 이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과 민간에 대한 정치의 폭주와 정부 개입이 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중남미의 오랜 파탄과 최근 튀르키예의 살인적 고금리·고물가가 잘 보여주고 있다.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고 중앙은행 총재를 함부로 갈아치운 결과는 역설적으로 서민들만 더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우리 헌법이나 정치 수준이 그런 정도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헌법의 반시장적 독소조항들은 차제에 대거 정비할 필요가 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이 좋은 사례다. 2013년부터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 제도는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당초 취지는 달성하지 못한 채 소비자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헌법 제123조 3항에 비춰 보면 타당성을 지닌다. 실제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은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았다. 대형마트 문제의 근원은 결국 헌법 조항인 것이다. “국가는 농수산물의 가격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조항(제123조 4항)은 도시 서민의 식료품 물가 부담을 외면한다. 이처럼 헌법에 따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결과적으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국가가 국민 복지를 챙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세금 부담과 국가 채무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헌법에 시장 개입주의적 요소가 들어가게 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우리 헌법은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세력권을 확장해 가는 가운데 분단국가로서 북한과 체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제정됐다.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 요소 도입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전환(AX) 시대를 맞은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국가 대한민국은 77년 전의 가난한 신생국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비롯한 규제 혁신을 여러 차례 약속했다. 정부의 의지와 별개로 헌법이 시시콜콜한 시장 개입을 허용한다면 규제 개혁 또한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 개헌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이 더 잘살게 하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권력 구조만이 아니다. 기업이 뛰게 하고, 국민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경제 개헌을 함께 추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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