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해 대단한 스캔들이 없다고 말하면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관련 스캔들은 ‘진짜 문제’라고 주장한다. 파월의 ‘죄’는 역사상 처음 Fed 청사 개보수 예산을 과도하게 쓴 것이라고 비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경질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는 파월이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연 4.25~4.5%인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3%포인트는 낮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Fed가 1950년대 진정한 독립을 얻은 이후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이 고금리가 경기 발목을 잡는다는 불만을 표시했다. 게다가 파월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할 만한 합리적 근거도 있다. 파월 의장은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시인했다. 파월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도우려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음모론은 믿지 않더라도, 그가 지난 4년간 지나치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폈고 현재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노골적인 금리인하 압박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말을 고분고분 따를 사람을 파월 후임으로 앉히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Fed가 대통령 입맛에 따라 움직인다고 시장이 판단하면 Fed의 통화 완화(금리 인하) 정책이 오히려 긴축(금리 급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진심으로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낮춰 연 1.25%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을 찾는다면, 시장은 Fed가 인플레이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고, 그 결과 국채부터 회사채까지 모든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신성불가침한 건 아니다. 1951년까지 통화정책은 사실상 재무부가 주도했다. 대부분 국가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확립한 건 지난 50년 사이였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였다. 현재 통화정책 모델이 재설계돼야 할 이유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도 있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위기, 즉 재정 건전성이 단기적인 정치 목표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은 통화정책 구조가 정치인의 욕망을 증폭하기보다 억제하는 쪽으로 짜일 필요성을 보여준다.
오히려 금리 오를 수도
파월을 해임하면 트럼프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당시 폴 볼커 Fed 의장과 자주 충돌했고, 결국 앨런 그린스펀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5년 뒤 후임인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1992년 경기 침체기에 Fed가 긴축을 유지한 탓에 재선에 실패했다고 그린스펀을 탓했다. 1951년 6·25전쟁 당시 Fed는 국채 금리를 연 2.5%로 억제하라는 요구에 시달렸다. 당시 재무부 윌리엄 맥체즈니 마틴이 이 정책을 실무에서 이끌었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Fed 의장인 토머스 매케이브를 해임하고 재무부 충신 마틴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마틴은 역사상 가장 강경한 매파 성향의 중앙은행 수장이 됐고,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후임 대통령들의 분노를 샀다. 이런 일이 트럼프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원제 ‘Trump May End Up Sorry He Tried to Control the F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