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호텔경제론'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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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19 17:41 수정2025.05.19 17:41 지면A31

[천자칼럼] '호텔경제론' 소동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은 비합리적인, 비과학적인 경제이론을 비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서인도제도의 주술 종교인 부두교를 단어 앞에 붙여 과학이 아니라 희망 사항을 담은 이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 경선 과정에서 감세 및 재정지출 축소가 경제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레이거노믹스’를 주창하자, 경쟁자인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가 맹비난하며 처음 썼다. 지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깎아내릴 때 사용한다.

지난 18일 첫 대선 후보 TV 토론회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이른바 ‘호텔경제론’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호텔 예약을 취소해도 돈만 돌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괴짜 경제학”이라고 꼬집으면서다. 국민의힘도 “무책임한 먹튀 경제론”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를 살리려면 자금 순환이 필요하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단순화한 것인데 딴지를 걸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때 지역화폐 효용 차원에서 꺼낸 호텔경제론을 16일 군산 유세에서 다시 거론했다. 한 여행객이 10만원으로 호텔 방을 예약하면 호텔은 그 돈으로 가구점에서 침대를, 다시 가구점은 치킨집에서 통닭을, 치킨 가게는 이웃 문구점에서 필기구를 구입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식으로 지역 상권이 활기를 띨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호텔 예약자가 예약을 취소하고 10만원을 찾아가도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학자들은 경제를 단순히 도식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실 경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꼬집는다.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없이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이 이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반복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경제는 순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순환의 결과로 고용, 생산 등 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어제 민주당은 팩트체크를 통해 이 후보가 호텔경제학을 명명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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