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치 끊고 나니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난은 공감의 물결로 가득했다. “뉴스 끊고 우울감이 줄었다”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정치 논란 속에서, 우리는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소진을 겪는 것은 아닐까. 언론의 목적이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다지만, 요즘 뉴스는 종종 분노를 유통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정치적 사건이 국민 개개인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미국심리학회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9%가 대통령 선거를 주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77%는 국가의 미래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서울대 연구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54.9%가 만성적인 분노 상태에 있으며,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정치 피로는 단순한 의견 충돌의 부산물이 아니라 국민의 심리적 건강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정치 뉴스 과몰입은 개인의 일상과 관계를 잠식한다. “뉴스를 본 게 아니라, 뉴스에 삼켜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요즘 많은 시민이 겪고 있는 집단적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근본에는 우리의 ‘주의력’과 ‘감정’이 과도하게 동원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업무에 헌신적이고 결정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감정을 후순위로 미루며 사회 이슈에 강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치한 감정은 언젠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분출되며, 때로는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뉴스는 정보여야 하지, 감정의 출구가 돼서는 안 된다.
해답은 거창한 정치 개혁이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보다 개인의 삶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세계에서 잠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숨을 돌릴 여유를 찾는다. 종이책을 펼치고,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며, 식물을 돌보거나 누군가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감정 회복의 기제가 된다.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고 지나친 몰입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마트워치나 앱을 통해 심박수, 수면의 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점검해보면 정치 피로가 어느새 생체 리듬까지 잠식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와 무관한 공동체, 즉 음악·운동·봉사활동 등 가치중립적인 활동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유효하다. 때로는 설거지나 손글씨 같은 단순한 손의 움직임조차 마음을 가다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관심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의 중심축이 돼선 안 된다. 특히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한 오늘날에는 나의 감정을 돌보고 회복하는 일 또한 하나의 리더십이자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다. 우리는 지금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뉴스에 소비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서적 주권을 회복한 시민만이 건강한 사회적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이지, 인간의 감정을 소진하는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정보의 세계에서 감정을 지키고, 삶의 중심을 되찾기 위한 ‘정신적 비상구’가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이 피로를 겪지 않도록 정치가 갈등의 무대가 아니라 회복의 플랫폼이 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