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현]남녀 구분 짓는 공약 자체가 정치권의 낡은 편 가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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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정치부 차장

김지현 정치부 차장
애초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여성 공약을 따로 부각할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민주당 선대위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도 ‘여성 공약’ 카테고리는 따로 없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여성 안심 대통령이 되겠다’며 직접 여성 인권을 상징하는 파란 장미를 들고 ‘여성 유세’에 나섰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렇게 결정한 배경엔 특정 성별 집단을 겨냥한 공약을 냈다가 괜히 상대 성별을 자극하기만 한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지난 대선 때 친여성 후보를 표방했다가 ‘이대남’ 표를 국민의힘에 뺏겼던 만큼 이번엔 아예 젠더 공약을 내지 말고 ‘로키(low-key)’로 가자는 전략인 것이다.

실제 이 후보에 대한 ‘비토’는 전 세대 중 20대 남성에서 여전히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6∼8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은 21%로, 70세 이상 남성(29%), 여성(32%)보다도 낮았다. 20대 남성 중 64%는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잘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역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이런 이대남 표심을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지난 대선 ‘여성 띄우기’를 택했던 민주당이 이번엔 의도적으로 ‘여성 지우기’에 나선 셈이다.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정치권의 편 가르기 공약 탓에 선거철마다 젠더 갈등이 악화됐던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나쁘지 않은 접근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난 대선 때처럼 여성가족부 존폐나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성 대결을 유발하는 프레임은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오래가진 못했다. 친명(친이재명)계 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왜 여성 공약이 없냐”고 반발하는 여성 유권자들의 ‘문자 폭탄’ 세례에 “여성에겐 출산 가산점을 줄 것”이란 취지로 답장을 보낸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당 소속 의원들에게 하루 수천 통씩 항의 문자가 들끓자 ‘집토끼’인 2030세대 여성 표심 이탈이 뒤늦게 우려됐는지 이 후보가 직접 사과를 했다. 문자메시지로 흥한 당이 문자메시지에 그대로 당한 셈이다. 여진이 이어지자 이 후보는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 정책’이란 이름으로 ‘데이트폭력 범죄 처벌 강화’,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 등도 뒤늦게 발표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초반 ‘일과 가정 양립’ 등을 담은 여성 공약을 준비하면서 전문가 자문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건 여성 공약이 아닌 모두를 위한 노동 공약’이란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만의 과제가 아니란 점에서 분명 합당한 지적이다. 이 후보가 뒤늦게 떠밀리듯 내놓은 여성 정책도 엄밀히 따진다면 치안 정책이자 노동 정책이며 산업·경제 정책으로 분류돼야 맞다.

결국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한 낡고 조급한 선거 마케팅이 모두를 위해 보편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공약을 자꾸 특정 성별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더 이상 젠더가 선거의 계절마다 정치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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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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