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43주년] 토마스 비간트 獨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 “글로벌 AI 패권경쟁, EU-韓 기술동맹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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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

최근 한국이 미국·중국·일본에 앞서 세계 최대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준회원국에 가입했다. 한국 연구진들은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동일한 조건으로 한국정부가 아니라 EU에서 연구비를 직접 받을 수 있고, 컨소시엄 주관기관까지 될 수가 있다. 자본이나 기술 측면에서 EU와 일종의 기술동맹을 구축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됐다.

2028~2034년 지원예산이 2배로 늘어난 '호라이즌 유럽'은 유럽경쟁력기금과 연계돼 가장 혁신적인 연구를 뜻하는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개발할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다. 차세대 인공지능(AI), 융합 에너지, 양자 컴퓨팅 등 다양한 연구성과가 실증을 넘어 상용화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최대규모 응용과학 연구기관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Fraunhofer-Gesellschaft)는 'AI 3대 강국'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한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걸쳐 AI 대전환(AX)을 가속화해 EU 회원국들과 양자·다자간 국제공동연구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신문은 창간43주년을 맞아 프라운호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하인리히헤르츠연구소(HHI)'의 토마스 비간트 연구소장을 인터뷰하며 우리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발전방향을 찾고자 했다.

토마스 비간트 연구소장은 “독일은 하드웨어, 로봇 공학, 제조 시스템을 통합하는 '피지컬 AI' 등에서 미국·중국보다 강점이 있다”면서 “한국 파트너들과 AI는 물론 에너지, 모빌리티, 스마트시티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공동 연구할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독일이 산업 강국으로 부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나. 그 중 HHI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1949년에 설립된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과학 연구와 실용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독일의 산업 부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프라운호퍼는 프로젝트 기반 협업, 표준화된 기술 개발, 라이선스, 스핀오프에 이르기까지 연구활동이 산업 성장과 수출력을 견인할 수 있도록 공헌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 위치한 HHI는 1928년 하인리히헤르츠진동연구소로 설립돼 약 100년 역사를 지녔다. 2003년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편입됐으며, 총 76개 프라운호퍼 연구소 중 가장 크고 인지도가 높다. 약 1000명에 달하는 HHI 직원들은 이미지·동영상 처리 및 코딩, 디지털 통신, 포토닉스, 광 네트워크와 최근 중요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AI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학문적인 기초연구부터 산업현장에 즉시 투입해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원천 알고리즘과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HHI가 수행한 산업별 대표적인 AX 성과를 소개한다면.

▲공장, 바이오, 의료, 방송, 법률 등 모든 산업이 AI 융합해 발전하고 있다. HHI도 AI 관련 프로젝트를 광범위하게 수행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를 예로 들면 피부암 검진 이니셔티브 '아이토보스(iToBoS)'와 같은 멀티모달 의료 영상·진단 AI가 대표적이다. 방송·미디어에서는 글로벌 표준에 영향을 미치는 AI 기반 비디오 압축, 스트리밍 최적화, 화질 평가, 딥페이크 인증을 수행한다. 제조분야는 '인더스트리 4.0'을 위한 지능형 시각 검사, 센서 융합, 디지털 트윈에서 AI가 활용된다. 'AI 신뢰성' 분야에서도 성과가 있다. 중요 애플리케이션에서 AI 기술이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인다. 네트워크 분야에서는 6세대(6G) 이동통신 개발, 네트워크 최적화, 적응형 광통신을 위한 머신러닝에서 성과가 나고 있다.

-HHI는 AI 등 미래 디지털 산업을 선도하는 연구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AI 등 첨단 산업의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단기적으로 AI 모델을 의료, 제조, 미디어 등 실용적인 응용 분야에 통합하고자 한다. 중기적으로는 이러한 솔루션을 확장하고 업계·스타트업과 협업을 강화해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 출시를 지원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AI' '첨단 포토닉스' '6G 통신' 등을 융복합해 독일과 유럽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AI·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

-한국의 경우 지난 6월 출범한 새 정부가 '3대 AI 강국 도약'을 핵심 국정 목표로 선언했다. 독일 정부의 AI 정책 방향이 궁금하다. 정부 정책과 관련해 HHI는 어떤 역할을 하나.

▲한국은 세계 3대 AI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한국의 우수한 제조 역량을 활용해 국민 생활 전반에 AI를 도입하는 '피지컬 AI'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매우 야심차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설정했다고 판단한다.

특히 '피지컬 AI'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조업의 우수성을 직접적으로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한국은 이러한 강점이 있는 만큼 신뢰성·투명성이 높은 AI를 로봇공학, 차세대 통신 분야 등의 발전과 결합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이 있다. 프라운호퍼 HHI와 같은 유럽 연구기관과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비전을 국제무대에서 실질적인 리더십으로 구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독일은 모빌리티, 헬스케어, 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서 AI관련 연구, 기술이전, 윤리성·신뢰성 등 성과를 연계하고자 한다. HHI를 비롯한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AI 알고리즘, 표준화 등을 기여해 학계와 산업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특히 컴퓨터 비전, 비디오 코딩, 통신, 센싱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동시에 AI 애플리케이션이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사용 가능하도록 안전성을 보장한다.

-독일에는 도이치텔레콤, BMW, 보쉬, SAP 등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경쟁력이 상당하다. 한국 기업들이 독일에 투자한다면 어떤 시너지가 있을지, HHI와도 기회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제조·소비자 전자 분야 글로벌 리더십은 독일의 산업 공학 및 표준화 역량과 결합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로봇 공학, 스마트 가전, 커넥티드 모빌리티 분야의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HHI는 AI, 통신, 포토닉스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매우 개방적이며, 한국과 독일 기업을 하나로 묶는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한다.

-독일에서는 베를린공대나 뮌헨 공대과 같은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교들이 AI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HHI와 대학 간의 협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인가.

▲프라운호퍼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연구와 교육이 긴밀하게 통합한다는 점이다. 저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베를린, 포츠담 등의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우리는 최첨단 AI 연구 분야의 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계와 응용 연구 간에 지식과 경험이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차세대 AI, 커뮤니케이션 혁신가를 양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국방, 자동화, 탄소 배출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한 독일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프라운호퍼 또한 스타트업과 AI 관련 연구개발(R&D)을 진행해 상용화까지 성공한 적이 있나.

▲물론이다. 상업화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전통 중 하나이며 사명의 핵심 부분이다. 프라운호퍼 HHI의 AI 및 비디오 기술은 H.264, H.265, H.266과 같은 국제 표준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산업 응용 및 분사에도 기여해 왔다. AI, 비디오 처리, 통신 분야의 프로젝트에서 여러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프라운호퍼 네트워크 내에서는 매우 유망한 AI 관련 벤처를 지원하는 자체 인큐베이터·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스타트업 앳 HHI(Startups at HHI)'를 운영하고 있다. HHI는 이러한 혁신을 만들어가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했던 'IFA 2025'의 트렌드는 한 마디로 'AI'였다. 최근 독일 가전제품에 프라운호퍼 HHI의 AI 기술이 적용된 적이 있나.

▲AI는 가전제품을 단순한 도구에서 지능적이고 적응력 있는 시스템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디바이스는 점점 더 사용자 행동을 통해 학습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며 다른 스마트 디바이스와 원활하게 상호 작용할 것이다. HHI의 사명 중 하나는 차세대 가전제품이 보다 효율적이고 반응성이 높으며 사용자 친화적일 수 있도록 연구에 기여하는 것이다. HHI는 에너지 관리, 센서 통합, 지능형 제어 시스템 분야에서 정기적으로 기업과 협력한다. AI 기술은 많은 첨단 가전제품의 혁신을 뒷받침하고 더 똑똑하고 적용이 잘 될 수 있게 도와준다.

신뢰성 높이는 AI, 온디바이스 인텔리전스를 위한 저전력 엣지 AI, 커넥티드 디바이스를 위한 첨단 네트워킹·포토닉 솔루션 등 HHI의 핵심 기술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이 차세대 가전제품에서 성능, 신뢰성,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 '생성형 AI' '피지컬 AI'와 같은 AI 기술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있나.

▲전 세계적으로 현재 미국과 중국은 투자, 규모, 대규모 AI 모델·생태계 개발 측면에서 AI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은 클라우드 인프라, 기반 모델, AI 기반 서비스 상용화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중국은 신속한 배포, 소비자 통합, 데이터 기반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독일은 미국·중국과 직접적으로 투자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독일과 유럽은 투자규모는 작지만 산업 영역에서 AI와 하드웨어, 로봇 공학, 제조 시스템을 통합하는 '피지컬 AI' 등에서 AI의 신뢰성·투명성을 높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HHI는 신뢰성과 효율성이 높은 애플리케이션(앱) 맞춤형 고성능 AI 솔루션을 개발 역량이 뛰어나다.

-한국은 올해 미국, 중국, 일본에 앞서 호라이즌 유럽의 준회원국이 되었다. 한국 정부, 연구기관, 대학, 기업에 어떤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HHI는 AI부터 에너지, 모빌리티, 스마트시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한국 파트너들과 공동 연구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국과 유럽은 지리적 한계는 있지만 시너지와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양측이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함으로써 과학, 기술, 산업 혁신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프라운호퍼는 유럽과 한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다국적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겠다.


◆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독일 함부르크-하르트부르크 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 전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독일 베를린 공대 전기공학·컴퓨터과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2014년부터는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2018년부터 보건·헬스케어 분야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AI에 관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세계보건기구(WHO) 포커스 그룹(ITU-WHO Focus Group on AI for Health)' 의장을 역임했다. 2023년부터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포함한 'AI에 관한 TTU-WHO-WIPO 포커스 그룹' 의장 역할을 수행 중이다.

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토마스 비간트 독일 프라운호퍼 HHI연구소장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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