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6〉국가기관 독립, 선진 대한민국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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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난 11월 7일, 국가기관의 독립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관련자들의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담당 검사들이 직접 나서서 “법무부 장관과 대검 지휘부의 부당한 지시로 항소장을 제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검찰의 이번 사태를 보며 필자는 깊은 우려를 느낀다. 이 일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과 국가 기관 사이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드러낸 사건이다.

1970년대 문화공보부는 언론 검열을 제도화했다. 1980년대에는 신군부가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시민들을 무력 진압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양상만 달라졌을 뿐, 권력의 기관 장악은 되풀이됐다. 2000년대에는 공영방송 인사 개입 논란이 이어졌고, 2010년대에는 청와대와 국토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에는 정권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총장을 법무부 장관이 징계하려다 법원이 제동을 건 사건이 벌어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기관의 독립성은 흔들려 왔다.

야당일 때는 '기관의 독립성'을 외치다가, 집권하면 '정부 통제'를 강화한다. 그 결과 전문성은 무너지고, 정책 일관성은 사라지며, 국민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국가기관 독립성이 무너지는 근본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인사권의 집중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주요 기관장을 직접 임명하고 이사회 구성까지 좌우한다. 전문성과 독립성보다 정치적 충성도가 우선시된다. 둘째, 예산권의 통제다. 정부가 각 기관 예산을 쥐고 있으니 기관들은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셋째, 책임 추궁 시스템의 부재다. 독립성을 침해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제재가 거의 없다.

선진국들도 완벽한 제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첫째, 사법부의 독립성이 확립돼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어긋난 정부 조치에 단호히 제동을 거는 것으로 유명하고, 프랑스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법안에 제동을 걸며 견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해왔다. 사법부는 권력이 국가기관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실질적으로 제어한다. 둘째,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도 확고하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아갔지만, 국가 권력의 탄압을 받지 않았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도 정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으나, 정치적 갈등이 있었음에도 보도 자유는 제도적으로 보장돼 왔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셋째, 정치권의 견제가 작동한다. 일본에서는 검찰 인사 개입 논란이 정권에 타격을 주자, 관련 고위 인사가 사퇴했다. 캐나다에서는 총리실의 수사 개입 의혹이 청문회로 이어지며 총리 측근이 물러났다. 독립성을 침해한 책임자는 실제로 정치적 대가를 치르며, 견제 시스템은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결국 '독립성을 지키는 독립성', 즉 상호 견제 시스템 전체가 작동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주요 기관장 임명에는 여야 합의를 의무화하고, 독립적 검증위원회를 법제화해야 한다.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교차시켜 정권 교체기에도 기관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주요 독립기관은 일정 기간 예산을 보장받고, 일방적 삭감이 불가능하도록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기관 독립성을 침해한 정치인은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독립된 국가기관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기관을 뒤흔드는 관행은 이제 끝나야 한다. 개혁의 이름으로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것도, 통제의 이름으로 전문성을 짓밟는 것도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국가기관,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이끌 넥스트 거버넌스의 출발점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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