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이룬 경제성장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변변한 생산시설 하나 남은 것이 없었고, 보릿고개로 불린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인재’와 ‘열정’ 덕분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소까지 판 뜨거운 교육열과 그 교육열이 길러낸 우수 인재, 잘살아보자는 국민의 강한 의지, 그리고 창의·혁신으로 불가능에 도전한 기업인과 노동자의 열정이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요즘 인재는 산업현장을 외면하거나 한국을 떠나고, 열정은 식고 있다. 우선 인재들이 의과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작년 서울대 공대 신입생의 약 15%가 입학을 포기했고, 의대와 연관된 바이오 분야 학과는 약 25%가 입학을 포기했다. ‘서울대 위에 의대다’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여기에 학원가에는 ‘초등생 의대반’이라는 조기 교육 열풍이 넘친다.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이공계에서 배출되는 석·박사급 인재 중 상당수가 한국을 등지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해외 기업과 대학으로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인공지능(AI) 인재 유출입지수는 -0.3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권인 35위다. 인구 10만 명당 AI 전문가 3.6명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특히 반도체, 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성과가 좋은 인재일수록 해외로 이주하는 비중이 높아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대 변화를 읽고 사업 기회를 잡아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업가정신마저 쇠퇴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25년 국가경쟁력 평가(69개국 대상)에서 기업가정신 등을 보는 ‘경영 관행’의 한국 순위는 55위로 전년보다 27계단이나 떨어졌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와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등으로 우리 기업인들이 열정을 잃어버린 채 움츠러들었다는 진단이다.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인재 유출’과 ‘열정 실종’을 이대로 방치하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 전체가 치명상을 입는다. 결국 답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인재를 제대로 키우지도, 지키지도, 데려오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대학은 규제에 막혀 빠르게 변하는 산업 수요에 맞춘 인재를 키워내기 어렵다. 교육과정은 경직돼 있고, 전공 간 이동이나 융합 학문을 시도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 현장은 성과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오래 일한 사람이 높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지배적이고, 1주일에 52시간만 일하라는 근로시간 규제는 핵심 기술을 다루는 인재에게는 오히려 족쇄다. 이래서는 몸값 비싼 핵심 인재를 지키기도 어렵고, 해외에서 데려오기는 더 어렵다.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더 많은 인재를 키워낼 수 있도록 교육과정 운영에서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대학생의 전공 선택과 변경에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인재 이탈을 막고,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올 수 있게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 일한 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는 임금체계로 개편하고, 일하는 시간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핵심 인재에게는 근로시간 규제 적용을 예외로 해야 한다.
인재 양성과 열정의 재점화 없이는 불붙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실용적 개혁으로 새판, 새 틀을 잘 짜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