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았던 부분은 진화한 바퀴벌레들이 인간만 보면 무조건 죽이려 한다는 설정이었다. 마치 벌레만 보면 놀라서 없애려 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미국 생태학자 제프리 록우드 교수는 “인간에겐 벌레에 대한 혐오가 학습된다”고 했다. 인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낯선 생물체를 보면 두려움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배설물, 썪은 음식 등 병원균이 많은 환경에서 주로 나타나는 벌레에 혐오를 느끼고 회피함으로써 생존률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한반도 아열대화와 벌레들의 공습
요즘 이런 혐오 1순위는 ‘러브버그’다. 대규모 출몰로 지자체마다 퇴치전에 나섰다. 국회에선 러브버그 퇴치법이 발의됐다. ‘독성이 없고 생태계에 유리한 익충이니 그냥 둬도 된다’는 주장과 ‘혐오감을 준다면 사회적 해충이므로 박멸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등 사회적 논쟁까지 거세졌다.‘익충이냐, 해충이냐’ ‘방제하냐, 마냐’보단 러브버그가 왜 많아졌나부터 짚어봐야 한다. 중국 동남부 등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던 이 벌레는 점차 북상해 2015년부터 국내에서 발견됐다. 갈수록 더워지는 한반도 환경이 러브버그 폭증의 핵심 원인이라는 게 생태학자들의 설명이다. 벌레는 습하고 무더운 날씨 속에선 짧은 기간 내 몇 세대씩 발생하는데, 8일 서울 낮 최고기온은 37.8도로 117년 만에 가장 높았다. 2050년대까지 한반도 기온이 3도가량 상승하고, 폭염 일수는 7일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상 당국은 전망한다.
러브버그는 그나마 낫다. 생태계 교란종 꽃매미 수백 마리가 최근 수도권에 등장했다. 나무 수액을 빨아먹으며 농가에 피해를 주는 곤충이다. 10일엔 유충이 잎을 갉아 먹는 미국흰불나방 발생 예보가 ‘주의’ 단계로 상향됐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옮기는 작은소참진드기 등 사람을 죽이는 전염병 매개 벌레까지 증가 추세다.
익충-해충 논쟁보다 일상 속 환경 실천부터 세계보건기구(WHO) 분석 결과 평균 기온이 1도 오르면 말라리아 등 전염병은 5% 가까이 늘어난다. 얼룩날개모기가 퍼트리는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21년 294명에서 지난해 713명으로 증가했다. 전염병 매개 벌레가 많아지면 고령층, 어린이 등 감염 취약계층이 가장 피해를 본다. 한반도 아열대화에 대비한 정교한 방제 대책이 절실하다.질병을 옮기지 않더라도 대응 체계는 갖춰야 한다. 현재는 감염병, 병충해 등을 옮기는 벌레를 관리하는 법과 제도만 구비됐다. 러브버그처럼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 벌레의 경우 방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어떤 벌레가 어느 지역에서 급증해 피해를 줄지를 예측하는 시스템 또한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과도한 일회용품 소비와 에너지 사용 등 ‘편리하다’는 이유로 당연시하는 삶의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내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14t,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연간 약 90㎏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100만 종 이상이 현재 멸종위기에 처했는데, 대부분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됐다. 우리가 벌레를 혐오하며 제거하듯 지구도 인간을 없애야 대상으로 보고 있진 않을까. 이미 그 징후인 폭염 폭우 등 기후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늘고 있다. 러브버그 폭증, 일종의 경고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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