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최근 채 상병 특검 조사에서 ‘VIP 격노설’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화내는 걸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1년 전 국회 답변 땐 “채 상병 사건이 보고된 적도 없고,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던 자신의 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해병대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했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며 해병대 조사결과의 경찰 이첩을 보류시켰다는 ‘VIP 격노설’은 그간 전언으로만 알려졌었다. 회의 참석자였던 김 전 차장의 이번 진술로 윤 전 대통령은 수사 외압 혐의를 피하기가 어려워졌다.
김 전 차장은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실세였다. 안보실장이 3번 교체되는 동안 시종 자리를 지킨 ‘붙박이 차장’이었던 그는 마음만 먹으면 윤 전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참모였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화를 냈고, 이후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조사 결과를 바꾸려 했다면 군 사법절차에 대한 부당한 외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누구보다 앞장서 만류했어야 할 참모가 김 전 차장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방관하며 사실상 동조했다. 국회에선 거짓 증언으로 실체 규명을 방해했다. 그렇게 실세 지위를 지켜온 김 전 차장은 정권이 바뀌고, 파면된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되고, 자신도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특검에 진실을 밝힌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있는 권력에는 비위를 맞추며 권세를 누리다가 힘이 빠지면 등 돌리는 염량세태(炎涼世態)의 한 단면 같아 씁쓸하다. 윤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손꼽히던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과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윤 전 대통령의 불법적 지시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전 대통령은 최근 구속영장 심사에서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다. 국무위원들도 각자 살길 찾아 떠났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신이 오판할 때 직을 걸고 쓴소리할 수 있는 충직한 부하들을 멀리해 온 것도, 어렵게 나온 진언은 호통치며 내친 것도 그 자신이다. 자업자득이랄 수밖에 없다.-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