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서현]1학기 교실 AI교과서 혼란… 현장의 시행착오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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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경기도 한 초등학교의 3학년 J 교사는 올해 1학기를 돌이켜보며 ‘맨땅에 헤딩’이라고 표현했다. 학교가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연구학교로 지정되며 1학기 내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연결이 끊기거나, 기기 오류가 발생하면 교실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선생님! 저 이거 안 돼요!”를 외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기 고장이나 접속 불량으로 수업 흐름은 계속 끊겼고, 회원 가입부터 정보 제공 동의 절차도 까다로워 수업의 걸림돌이 됐다. AI교과서 기능을 설명하느라 수업시간을 허비하다 보니 아이들과 상호 작용은커녕 수업의 본질인 내용 전달조차 어려웠다. J 교사는 “아이들의 관심이 넘쳐 디지털을 활용하면 그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를 교실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에 에너지를 쏟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1학기 도입한 AI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가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방안을 공약한 데다 이달 말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올해 3월 처음 학교에 도입된 AI교과서는 넉 달 만에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손실을 입게 된 교과서 발행사들은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미 AI교과서로 일부 수업을 진행한 현장의 교사들은 2학기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AI교과서를 연구한 미국은 ‘AI’보다 ‘교과서’에 방점을 두고 장기적으로 고민해 왔다. 국가과학재단 주도로 2019년 ‘AI4K12 이니셔티브’를 발족해 만든 AI 활용 교육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사람’과 ‘신뢰’다. ‘AI는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전제에 정책 입안자, 교사, 교재 연구자 등 교육 주체 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짧은 도입 기간에 논란만 낳으며 신뢰가 훼손됐다. 교사의 준비 시간뿐 아니라 학부모, 정책 입안자, 교재 연구자 간 신뢰를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AI교과서 검정 심사가 늦어지면서 교사들은 교육 연수에서조차 교과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1학기를 허겁지겁 준비해야 했다. 학부모들은 교실에서까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교과서든 교육자료든 AI가 장기적으로 교육 시스템의 한 축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예측에 이견은 드물다. 이미 일부 학생들은 집에서 챗GPT, 제미나이와 상호 작용하며 수행평가 과제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의 추진 방향과 속도다. 교육부는 AI 활용 교육에 신뢰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올해 1학기 일선 교실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빠짐없이 점검해야 한다.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완전한 인프라’,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납득하는 수업’, ‘현장 의견을 반영한 더 좋은 수업자료’. J 교사가 전해온 ‘1학기 오답노트’의 핵심은 이 세 가지였다. 오답노트를 복습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정교하게 재설계하지 않으면 AI 활용 교육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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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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